관상본다는 택시 아저씨의 말
블루텅 스킨크 도마뱀 같은 나에게
관상보는 택시아저씨가 건넨 말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한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품고 정성들여 쓴 <청담동 살아요,돈은 없지만> (이하 <청담동>)이 세상에 나온 기쁨은 잠시, 회사 일이 갑자기 바빠졌다.
나라는 인간은 하루 중 최소 10분 정도는 다이어리를 펴놓고 할 일과 감정을 펜으로 정리해야하는데 그럴 여유는 없었다. 잠깐이라도 생각에 잠기려면 전화기는 울렸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9세 고사로 난리인 친구들을 둔(?) 아이가 학원 숙제를 쌓아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노 정신.
아이가 수학문제로 끙끙대는 동안 옆에서 잠시 노트를 폈다. <청담동> 출간을 하고 주변 사람들 평이 먼저 생각났다. 내 책을 처음 본 지인들은 가독성이 좋고 읽기가 편하다며 이 정도 글쓰기가 되려면 얼마나 읽고 연습했을지 상상이 안된다고 했다. 작은 순간을 포착해 글로 써내리는 관찰력과 섬세함에 대해서도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많은 후기 중에 인상깊은 후기는 직장동료들의 말이었다. 한 동료는 ‘언제부터 이렇게 겸손’했냐고 물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일을 추진하는데 주저함과 망설임이 잘 없다. 워낙 해외영업파트에서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이쪽에서는 전문가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책에 비춰지는 나는 몸을 배배꼬며 쭈굴대고 있다. 이 옷을 입는 게 맞나?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나? 숟가락 이렇게 집는거 맞나? 등. 일터의 시드니와 글 속 시드니 사이 간극에서 직장동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혼란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책에 대한 리뷰를 쭉 읽는데 작가에 대한 작은 칭송들이 엿보인다. 그걸 읽기 몇 시간 전에 친한 동기들과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어떤 대상에 대해 욕을 했다. 원색적을 비난을 이어가다가 잠시 주춤한다. 독자들 가운데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이 있으며 어떡하지? 자아성찰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단톡방에 한국이 자랑하는 대표 육두문자를 한 개씩 검색하며 6명의 동료 중에 누가 욕을 많이 하는지 찾아봤다. 결과는 비밀.
작가로 직장인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 학교 참관수업을 갔다. 우리 회사는 중간 반차가 가능해서 점심시간을 껴서 반차를 내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 향했다. 아이는 생명과학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당일 수업의 테마는 ‘블루텅 스킨크 도마뱀 관찰하기’였다.
독을 품은 듯 새파란 혀를 날름대며 아이들 주변을 활보하는 도마뱀을 보며 잠시 공포심을 느끼는데 선생님의 한마디가 이 도마뱀을 무력화 시킨다.
“혓바닥 색이 파래서 마치 독이 있을 것 같지만 이 도마뱀은 독이 없습니다. 그냥 파란사탕 먹으면 혀가 파래지잖아요?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들 한번씩 만져보세요.”
도마뱀을 만지는 아이를 사진찍어주는 척 하면서 나도 슬쩍 도마뱀을 만져봤다. 넓적한 머리와 단단한 피부, 겉모습만 보면 맹독성 파충류로 보이지만 실제는 사육 난이도가 낮고 키우기 안전해 서구권에서는 애완용으로 수요가 높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잠시 카메라를 끄고 도마뱀을 찬찬히 보는데 뭔가 동료애가 느껴진다. 겉은 쎄보지만 속은 그저 애완용.
이거 완전 나네.
사무실로 복귀해야하는 시간이 돼서 택시를 잡는데 눈이 와서 그런지 택시가 안 잡힌다. 하긴 이런 날 청담동 안쪽 골목까지 들어와서 손님을 태워갈 기사님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택시 잡는 걸 포기하려고 하는데 극적으로 한 택시가 잡혀서 아이한테 인사도 못하고 과학실을 뛰쳐나왔다.
차에 타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덕담을 하신다.
“아니, 학생이에요?”
“아, 아니요. 애기엄마에요. 아이 수업 참관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래요? 너무 동안이네.”
“감사합니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혼자 좀 멍때리면서 가고 싶은 마음에 얼른 ‘감사합니다.’로 대화를 종료했다. 그런데 기사님이 계속 말을 거는데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셨다.
“아니, 내가 관상보는 사람인데 색시는 관상이 대박이네. 전생에 장군이었어. 최소 4스타.”
택시를 타고가는 10분동안 관상가(?) 기사님은 내가 성격이 어떤지 몇째딸인지 혈액형이 뭔지 줄줄이 맞추기 시작한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고 자식과 남편은 어떤지 족집게처럼 맞춰낸다. 내가 그에게 준 정보는 얼굴 하나였다. 화장이 다 지워진 피폐한 얼굴 하나.
눈 앞에 삼성역 사거리가 펼쳐졌다. 곧 택시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족집게 관상가 아저씨와 헤어지기 전 이거 하나는 물어보고 싶어서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글을 쓰는데, 글을 계속 써야할까요?”
올해 책을 두 권이나 내놓고 이런 질문을 하다니.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독성 하나없는 도마뱀과 동화되서 그런지 나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책을 읽은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나의 속삭이는 질문에 아저씨는 끼고 있던 마스크를 턱밑으로 확 내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색시, 색시는 55세즈음 엄청나게 큰 명예가 기다리고 있어. 한강 처럼돼. 그니까 돈 좇지말고 명예를 좇으면서 열심히 써. 색시는 대박이야 대박. 명예롭게 살면 돈은 자동이야.”
30살부터 운이 트였고 40살에는 하는 일로 금메달을 딴다고 한다. 30즈음 결혼과 동시에 청담동에 들어온 건 맞았으니 어느정도 일리가 있긴 한데, 사실 나는 명예는 필요없고 돈을 좇고 싶다고 하니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명예를 좇으며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한강'이 된단다. 근엄하고 묵직한 이름을 듣고 잠깐 시냅스가 정지된다. 한... 한강이요? 아저씨 좀 뻥이 심한데... 머릿속에 여러개의 물음표가 떠오른다.
정말요? 정말 저 대박나나요? 근데 아저씨 사기꾼 아니죠? 지금 미터키 안 찍고 운전하신 거 아니죠? 택시비에 복비 얹어 받는거 아니죠? 라고 따발총을 발사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택시는 목적지 앞에 도착해 있었고 아저씨는 미리 축하한다며 악수하자고 손을 건네고 있었다.
잠시 글쓰기 슬럼프가 왔었다. 올 한해 동안 100페이지 원고를 2번 채워서 그럴까. 더이상 쓸 글이 없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데 계속 쓰라니.
쓴 글을 모아둔 폴더를 열었다. 그 속에는 지난 5년 간 완성했거나 미완성한 소설과 에세이가 모여 있었다. 마치 방금 누군가 낳아놓고 떠나버린 파충류의 알처럼,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생명들이 보였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 퇴고를 했다. 어디에 낼지는 모르지만 일단 결과보다는 쓰는 행위에 집중해야겠다.
ps. 그런데 다들 관상 믿으시나요? 얼굴만 보고 어떻게 그렇게 다 맞추지. 신기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