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데뷔는 했는데,
기분이 그저 그래요.
그래서 여행을 떠납니다.
작가가 되면 바로 전업작가가 될 줄 알았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띠지가 영롱하게 빛나는 내 책을 상사 책상에 올려두며, “무운을 빕니다.” 한마디 남기고 떠나고 싶었단 말이다. 퇴사 후 평일 오후 1시 20분. 골목 깊숙이 있는 인적 드문 카페로 출근한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카페 사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작가님, 항상 드시는 거 맞으시죠?”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결제를 한 뒤, 다시 몸을 돌리며 한 박자 쉬고 이렇게 말한다.
“아참, 오늘은 따뜻한 걸로 할게요. 밖이 좀 추워서.”
꼴값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내 로망이다. 3-4시간 작업을 해야 하니 카페 가운데 자리보다는 가장 구석자리로 간다. 다른 손님들이 내 노트북 화면을 보지 못하는 각도로 앉아 전원을 켠다. 메일함을 열어 작업 관련 메시지에 답장을 쓰다 보면, 어느새 옆에 오트밀크로 만든 따뜻한 플랫화이트가 놓여 있다. 하트모양의 라떼 아트를 보며 밀도 높은 행복을 느낀다.
핸드폰 카메라를 열고 커피에 초점을 맞춘 뒤 노트북이 살짝 걸치게 사진 한 장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태그는 #여유 #행복 #전업작가. 게시물을 업로드하자마자 1초 만에 ‘좋아요’가 눌린다. 새빨간 하트의 속도감에 좋아요의 주체를 알아차린다. 바로 업무시간에 직원들 인스타 염탐하기로 유명한, 나와 일하는 내내 자신은 이런 회사에 남을 인물이 아니라고 퇴사할 거라고 우겼던 직전 상사.
이 모든 건 한바탕 봄날의 꿈이었다. 책을 낸 지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닌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추상적인 상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점점 현실이 되었고, 나는 옴짝달싹 못하는 주축 멤버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온전히 안정화될 때까지는 누구도 어디 가지 말자고 몇 번을 도원결의 했다.
선릉역의 한 커피숍에서 파이팅을 외칠 때 멤버들 몰래 그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 하나 없다고 어떻게 안될 텐데? 나 없다고 안 돌아가면 회사도 아니지. 결의에 찬 동료들 옆에서 옹졸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몸은 사무실에 처박혀 있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과한 책임감과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에 대한 애정이 결국 나를 옥죄고 있었다.
라고, 아직 회사원인 이유를 멋지게 포장했지만—
사실 내가 여전히 회사원 신분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가로써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두 권 연이어 출간하면서, 책을 낸 작가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놀랍도록 일상생활에 변화가 없다. 애초에 큰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정도로 변화가 없다니.
무튼 타의로 인해 목표했던 전업작가를 포기하고 회사에 남았다. 그런데 ‘회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토록 나가고 싶던 곳에 여전히 몸을 담고 있다니. 출간 준비를 하면서 출판사의 일하는 방식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출판계 사람들에겐 인간미가 있었다.
반면 회사는 달랐다. 회사는 짐승과 사람이 뒤섞여 사는 부락촌 같다. 누가 짐승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이 안 갈 만큼 인격적인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한번 잘못 물리면 바로 정육점으로 끌려가 시체처럼 있어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한 최소 정육점이라도 안 가기 위해 회사라는 정글에서 동물적인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즉… 매우 피곤하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모를 거다. 내가 이렇게 끙끙 앓고 있는 걸. 겉으로 보이는 나는 필명 ‘시드니’처럼 밝고 쾌활한 느낌이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로 데뷔한 후에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새로 발생한 작가라는 자아와 원래 자아가 계속 충돌하며 정신적으로 생채기를 내고 있다. 자꾸 어두운 내면으로 파고들게 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럴 거면 작가가 안 되는 게 나았나? 어둠 속에서 한번 빛을 본 사람은 평생 그 빛을 그리워하며 산다는데 빛을 안 보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그러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너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 거야? 작가로 살고 싶은 거야, 아니면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해서 컴퓨터 앞에 앉긴 앉았다. 그러나 글 대신 검색창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러다 마음의 병이 오는 건 아닐까?
그 순간 우연히 들어간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늘 경쟁률이 치열했던 마일리지 항공권이, 마침내 내가 원하던 일정으로 떠 있었다. 행선지는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마일리지 항공권 중 남은 행선지는 단 한 곳.
행선지: 시드니.
시드니? 그래, 나는 시드니였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회사와 작가 사이에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부락촌 같은 삶을 맴도는 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야 한다. 진짜 나에게, 진짜 시드니에게.
작가 시드니인가, 회사원 시드니인가.
답을 찾기 위한 여행,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호주에 대한 토막 상식 >
남반구라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다. 한국의 여름 = 호주의 겨울, 한국의 겨울 = 호주의 여름. 그래서 7~8월에 한국은 찜통더위인데, 호주 시드니에선 두꺼운 외투 입고 다녀야 한다. 내가 여행한 시기는 딱 7월 말부터 8월 초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