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이 라이프
네가 이 나이까지 결혼 안 하고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언젠가 엄마는 말했다. 결혼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에게,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딸의 인생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경로 이탈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엄마만큼의 굳은 믿음은 아니지만 나 역시 20대 때는 막연히 '때 되면 결혼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이 '선택 사항'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낮았던 시절이었고, 그에 관해 딱히 주체적인 사유를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으레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되면 남들처럼 결혼하고 살겠거니 여겼다. 내 인생인데도 '꼭 결혼해야 할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따위의 다른 옵션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내게 결혼 제도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류에 가까운 제도임을 깨닫긴 했지만, 주체적인 선언보다는 '어쩌다 보니' 비혼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20대를 돌아보면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그건 '결혼했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아닌 '비혼을 전제로 인생을 설계했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갖게 된 결과론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시작할 당시 엄마가 반복적으로 했던 말 중 하나는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아무것도 사지 마라'는 거였다. 어차피 몇 년 후에 결혼하게 되면 새로 가전제품이며 생활용품을 새로 사야 하니, 굳이 돈을 써가며 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엄마 말대로 나는 질 좋고 비싼 물건의 소비를 절제했다(그런데도 왜 돈이 없는지는 미스테리이지만). 꼭 필요하진 않지만 갖고 싶은 사치품을 살 때는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올라왔다. 말 잘 듣는 순종적인 딸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것을 사고 누리기에 월급은 너무나 소박하고 자취방은 비좁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엄마의 반복적인 세뇌도 은근하고 강력한 작용을 했을 것이다. 비혼 결심이 확고했다면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았겠지만, 앞서 말했듯 그 시절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몇 년 쓰고 버리기 적당한 것을 골랐다. 적금 상품을 가입할 때도 '혹시 목돈 쓸 일(결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3년 이하 상품만 가입했다. 집은 세탁기와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이 제공되는 대신 크기가 협소한 풀옵션 원룸을 선택했다. 공간은 넉넉하지만 목돈을 들여 가전·가구를 마련해야 하는 빌라는 선택사항에 넣어본 일이 없다. 괜히 목돈을 들여 사 봐야, 엄마 말대로 '혼수품으로 새로 사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러한 삶의 방식은 매우 부적절했다. 우선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인생의 배우자를 내 미래에 끼워 넣으면,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한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진다. '내'가 만드는 미래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미래이기에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인생 설계보다는 막연한 공상에 그치기 쉽다. 물론 인생이 설계한 대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막연한 공상과 구체적인 설계가 있는 상상은 다른 결과값을 가져오지 않을까. 특히 여성은 혼수를 준비할 정도의 목돈만 마련하면 되는 대신 결혼 후 가사와 육아 노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거래 룰이 존재하는 이 사회의 결혼 시스템을 생각하면, 더더욱 주체적인 상상과 계획은 차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미리 자신의 미래에 한계를 그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커리어를 선택할 때 '결혼 후에 지속하기 적당한 일인가(=육아와 일을 병행하기에 적당한가)'를 고려하거나, '결혼 적령기'를 앞두고는 유학과 같은(지금 유학을 가면 제 때 결혼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봐왔나.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을 '임시 상태'로 여기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삶의 태도는 가장 나빴다. 비혼이 아닌 미혼(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완의 상태)으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다 보면, 현재의 삶은 대충 때우고 보내야 할 임시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다. 소비를 통해 취향을 찾아가는 쪽이었든, 미래를 위해 욕망을 누르며 돈을 아끼는 쪽이었든 내 일상과 삶의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지 주체적으로 그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최소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그것도 결혼 때문에!) 현재의 삶을 ‘임시’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비혼이 아닌 기혼이 디폴트(기본값)인 사회 인식 자체가 이상하다. 최근 몸을 주제로 나이이즘 3호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몸의 정상성'에 의문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고 생산활동이 가능한 몸을 기본값으로 설정하지만 사실 그러한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몸은 허상일 뿐이다. 건강한 몸이 표준인사회는 아프고 불편한 몸에 죄책감을 부여한다. 특히나 고령자가 점점 늘어지는 요즘 시대에는 건강한 몸이 아닌 상호 돌봄과 의존이 필요한 몸을 기본값으로 세팅하는 관점의 대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결혼의 유무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비혼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상태이자 혼자만의 의지로 지속 가능한 것이지만, 기혼은 현재 상태를 벗어나는 의식적인 변화이자 타인과의 협의가 있어야 가능한 삶의 형태다. 기혼 생활을 평생 유지하더라도 둘 중 한 사람은 비혼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는 기혼이 아닌 비혼 상태를 인간 생애의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젊은 세대의 결혼관이 급격히 달라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현재의 많은 20대 여성들에게, 결혼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항목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한 변화가 반갑고 설렌다. 인생의 기본값을 어디에 두느냐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완전히 다른 삶의 행로를 가져오기 마련일 테니. 하다못해(?) 재테크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두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하면 그뿐이다. 비혼을 염두에 두었다가 결혼하게 될 때 곤란한 거라곤, 고작해야 새로 사야 할지도 모를 냉장고와 세탁기 정도일 테니.
그러니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비혼주의자든 결혼주의자든 혼자 살아가는 삶을 기본 전제로 자신의 인생을 그려보자. 그것이 아쉬움 많은 20대를 보낸 30대 비혼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이미 철 지난 얘기일지도 모를 단 하나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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