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홍대 번화가를 걷다가 순간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적이 있다. 사실은 늘 보아왔고 생각 없이 지나쳐 온 풍경일 텐데, 그날따라 기묘한 불편함에 발걸음을 멈춘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봤다. 시야에 십수 개의 가게 간판이 들어왔다. 모두, 외국어로 쓰여 있었다. 한글로 표기된 간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 만나던, 온통 낯선 외국어로 도배된 세계에 둘러 싸여 있는 것과 다를 것 없는 풍경.
가게는 간판을 못 읽어도 통유리 너머 풍경으로 종류를 짐작할 수 있으니 문제 없다고?어떤 언어를 쓰는지는 운영자의 마음이라고? 이런 경우는 어떨까.
부모님과 제주여행을 갔다가 겪은 일이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이라 나름 괜찮은 급의 호텔을 알아보고 예약했다. 호텔 룸 화장실에는 샴푸와 린스, 바디클렌저, 로션 등 똑같은 디자인의 욕실용품이 가지런히 비치되어 있었는데 용기 디자인도 예뻤고 향도 좋았다. 해당 호텔이 어느 화장품 브랜드와 제휴해서 만든 전용품인 듯했다.
그런데 샤워를 위해서 욕실에 들어간 엄마가 이내 나를 불렀다. 용기의 글자가 전부 영문이라서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거였다. 심지어 엄마가 읽기에는 글자 크기조차도 심하게 작았다. 나는 욕실용품을 사용 순서대로 줄 세운 후 "왼쪽부터 샴푸. 린스. 바디클렌져야" 라고 설명해줬다.
화가 났다. 일상용어로 자리 잡아 버린 영단어를(그리고 딱히 대체어가 없는)말하고 듣는 것과, 문자로 쓰는 행위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욕실용품은 투숙객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실용품인데 왜 한글 안내가 없는 걸까. 그 호텔은 '기본 고객'을 어떤 사람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걸까. 어느 정도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호텔의 급과 맞지 않음을 은근하게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그런 고려나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 그저 시각적으로 세련되고 트렌디해 보이면 그만이라는 무지한 악의, 순진한 무례일 가능성이더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그런 이유로, 가독성이 중요한 물건이나 공간에서조차 한글 표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넘쳐흐른다. 간판뿐 아니라 상업시설의 안내문이 영문으로만 표기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카페 메뉴판이 오직 영문으로만 표기되어 있기도 하고, 운영시간과 같은 기본 안내사항도 영문이 기본값이다. 그래야 있어 보이니까. 한글 디자인은 못생겼으니까. 세련된 브랜딩을 하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런 이유로. 단적인 예로 나는 지금 이 글을 어느 카페에서 쓰고 있는데, 돌려서 잠그고 여는 방식인인 이곳 화장실 문고리에는 'close'와 'open'만이 적혀있다.
만약 제주도 호텔을 엄마 혼자 이용했다면, 엄마는 대충 짐작으로 샤워를 하거나 직원을 불러 무엇이 린스이고 무엇이 로션인지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엄마의 질문에 호텔 직원은 친절히 설명해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왜 영어로만 써놨냐, 여기가 한국이지 미국이냐”라며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볼멘소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영어를 몰라서, 배운 적이 없어서, 배울 수 없는 삶이었어서 욕실용품조차 구별하지 못했다는, '못 배워서' 느끼는 모멸감과 서러움을 잠시라도 느껴야 했을 것이다.아무런 잘못도 없이.
세련된 브랜딩을 한다는 이유로, 혹은 효율적이라는(누구의 기준에서?) 이유로 기본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현상은 비단 글자 사용에만 적용되는 일도 아니다. 노인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 키가 작은 아이는 이용하기 어려운 키오스크 기계는 비판 의식조차 없이 빠르게 사람을 대체하는 중이고, 간판조차 없는 힙한 동네의 힙한 카페는 오로지 인스타그램과 지도 앱 사용에 능한 이들만을 위한 몫이다. 그렇게 언뜻 눈에 잘 띄지 않는 듯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단단하고 높은 투명 문을 입구에 세워두고, 아닌 척 딴청을 피운다.
그런 사회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함께 즐기고 있는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신인류가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가 세상을 점령해 식당 메뉴를 읽고 주문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고 해도 불평할 수 없지 않을까.
세련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은 중요하다. 인간은 시각적 요소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 존재고, 나도 이왕이면 예쁜 물건에 시선이 가고 손길이 간다. 책을 만들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을 한다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쓸 때도 많았다(반성하고 있다. 지금은 최소한 영문을 읽지 않아도 맥락 이해에 어려움이 없을 때만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간, 용도와 사용법을 파악해야 하는 물건에서 가독의 목적은 삭제하고 오로지 미적인 디자인만 남긴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사실 멋진 게 아니라 기본을 지키지 못한 모자란 디자인일 뿐이다. 인권감수성과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진짜 이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선도하지 못하는 후진 디자인일 뿐아닐까.
박의나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라이터. 독립잡지 '나이이즘'을 발행하며, 에디터 세계 안내서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를 펴냈다. 콘텐츠 기획, 집필, 인터뷰 등 콘텐츠를 만드고 편집하는 다양한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