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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루바 Nov 16. 2024

[섬선] 삼킬로미터 해변을 따라서

베트남 여행기 3.

'탄 호아'에서 동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작은 해변도시 '섬선(Sầm Sơn)'이 있다. 섬선에 대한 위키피디아적인 사실은 단 두 줄뿐인데 다음과 같다. '섬선시는 베트남 북부의 타인호아성 도시이다. 2017년 기준으로 면적은 44.94km2, 인구는 150,902명이다.' 그 외에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직접 보고 듣는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동쪽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갖고 있는데 그 길이가 약 3,200km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엔 다낭, 나트랑, 푸꾸옥 등도 포함되는데 이 도시들은 너무도 친숙해 방문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어느 휴양지가 갖고 있을 법한 뻔한 낙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군가의 바캉스를 잊지 못할 기억으로 충족시켜주기 위한 장치들이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도시들의 낙원 이면에 일상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본래 여행자는 환상을 좇는 법이므로 그런 것들로부터는 안전한 길을 따라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 3km의 해안을 따라 생활권이 형성된 도시 '섬선'엔 산해진미도, 낙하산을 달고 질주하는 보트도,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기에 나는 내 발이 조금 더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다고 느꼈다. 많건 적건, 이 또한 환상이겠지만.

섬선 시는 실제로는 6km의 해안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3km는 대형 리조트에게 내주어 사설 해수욕장이 되고, 골프장이 되었다. 게다가 이 리조트 단지 내에는 단독 펜션부터 호텔과 콘도 등이 도시를 다 채울 기세로 빽빽이 늘어서 있다. 5성급 호텔이 굉장히 저렴한 가격(5만 원)에 호사스러운 조식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사흘 정도 머무르게 되었는데, 내가 느낀 것은 단지 내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한 생활에 갇힌 위화감이었다. 잘 정돈된 조경을 따라 걷고 뛰고, 호사스러운 아침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생활엔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존재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내가 좇는 환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리조트 정문을 나선 날, 2천 원짜리 '분 보 후에'ㅡ어째서인지 섬선의 웬만한 골목에선 모두 '분 보 후에'를 팔고 있다ㅡ를 한 그릇 싹 비우고는 여러 의미로 '바로 이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섬선의 또 다른 이방인 John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John은 영국인이고,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다. 섬선에서 나고 자란 아내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적인 베트남 양식의 빌라에 이름은 John Peter house이고, 1층에선 분 보 후에가 아닌 피자와 스파게티를 팔고 있으니, 아내와 적절히 타협을 잘 본 듯하다. 게다가 해변에 즐비한 네온사인 호텔과 대형 식당으로부터 떨어져 '동네'라고 부를만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층 이 도시에 밀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늘어지는 한산한 오후에 창 너머로 쨍하는 꽹과리와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소리를 따라가보니 화환이 늘어선 한 가정집에서 각종 음식을 차리고,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투쟁이라도 하듯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의 장례식이라고 했다.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치러지는 이 장례식은, 한 인간의 죽음은, 이들의 일상과 결합되어 있었다. 우리는 단지 소설이나 영화 속 한 문장으로 치부하는 삶과 죽음의 밀접함을 이 사람들은 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리고 때가 되면 나팔을 울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알던 한 선장님은 한 번 자신이 배를 몰고 들어간 항구의 모습은 잊으려 해도 영영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 항상 입항 전에 항구의 모습을 펜을 들고 직접 그려주셨다. 참 신기한 능력이다 생각했는데 누군가 섬선의 모양을 묻는다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배를 몰고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이면 3km 짜리 해변을 주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더위를 피해 일출 시간에 맞추어 여섯시쯤 해변으로 나서면, 이미 수많은 인파가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식당들과 카페, 골프 카트(섬선은 주로 택시보다 골프 카트 같은 것이 이동수단으로 쓰인다.) 기사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몇 시에 일어난 걸까. 아무도 몰래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일어나는 민족 대회를 연다면 베트남은 영문도 모르고 순위권에 들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러닝의 상쾌함도 그만이었지만 그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상에 몰래 섞여 들어가는 것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섬선엔 이방인이 거의 없다. John과 나와 B 세 사람뿐인 것 같다고 느껴질 만큼 한 번도 외국인 여행객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발전을 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국내 여행객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섬선 사람들은 평등(?)하게 우리를 대해주었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베트남어로 말을 걸고, 다소 거친 호객 행위를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일단 앉혀놓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언가가 진행되곤 했다. B는 원래 바닷가 사람들은 무역을 해왔기에 거칠고 강한 것이라고 했는데 딱 우리의 처지가 갓 상륙한 이국의 무역상 같아 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길바닥에서 반미도 먹고, 오토바이 즉석 카페의 커피 맛도 볼 수 있었다.

이 삼킬로미터의 작은 도시도 결국 베트남이다. 그 말은 즉, 전쟁과 관련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 프랑스의 한 정보선이 섬선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1950년, 영웅적인 스파이 '응우옌 띠 로이'는 베트남 국무장관의 아내 역할로 이 선박에 폭탄을 들고 승선해 선박을 폭발시키고 침몰시켰다. 자신은 물론 폭발과 함께 영원히 수장되었다. 이 영웅을 기리기 위한 거대한 동상이 해변의 중앙에 결연히 버티고 서 있다. 오른손엔 당시 폭탄을 숨겼던 서류 가방을 들고 말이다. 동상 주변은 작은 광장이 되어 벤치가 여럿 놓여 있는데, 내가 동상과 함께 놓인 설명문을 읽고 있노라니 벤치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청년이 일어나 내게 "Good!"이라며 엄지를 날렸다.

해변을 등지고 섬선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자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빈도 순대로 나열해 보자면 위에서 설명한 '분 보 후에'를 파는 식당이 첫째고, 그늘 아래 앉아 웃통을 까거나 반팔을 말아올려 배를 완전히 드러낸 아저씨들이 두 번째다. 바닷가에 사는 것과 타투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ㅡ언제까지나 경험적으로 바닷가엔ㅡ타투를 한 아저씨들이 많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놀이공원도 많다. 거창한 놀이공원은 아니지만, 작은 바이킹이나 관람차 같은 놀이기구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심지어 일반 공원에도 놀이기구가 있다. (호찌민 주석이 특히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하던데 연관이 있는 걸까.) 아마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마지막은 야시장이 열리는 거리에 놓인 다트로 풍선을 터트리고 인형을 받는 게임대다. 다섯 걸음에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았는데, 전부 일괄 구매라도 한 듯 노란 풍선이었다. 아마 2024년 섬선의 최고 인기 게임인가 보다. 5만 동을 내고 B가 5개를 던져 3개를 맞추었는데 사장님이 적당한 크기의 인형을 주셨다. 순식간에 게임이 끝나버려 그냥 5만 동을 주고 인형을 산 기분이 들었다.


하루는 John의 추천에 따라 남단의 트레킹 코스를 다녀왔다. 햇빛을 벗어나 나무가 드리운 숲속을 산들바람과 함께 거닐 수 있는 곳이었다. 코스의 끝엔 'Temple of Fairy(요정 사원)'이 있었는데 신실한 불교 국가인 태국과 라오스의 그것에 비하면 정말 요정이 숨어 지낼 것처럼 귀여운 수준의 작은 사찰이었다. 사원에 이르기 전, 커다란 바위 몇 개가 겹쳐 놓여 있는 게 섬선이 내세우는 관광 명소인 듯했다. 그 앞엔 섬선의 슬로건인 'WOW Sam son'이라는 조형물까지 설치해두었지만 애석하게도 전혀 '와우'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섬선의 매력은 그런 맹랑함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원을 찾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지 사원 앞 야자열매를 늘어놓은 노상 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그중 첫 집의 전망이 맘에 들어 그대로 앉아 코코넛 주스를 마셨다. 분명히 1개를 주문했지만 2개가 나온 데다가 계산할 땐 처음 말했던 가격보다 2만 동이나 더 받아간 아줌마는 그 수법이 '와우'스러웠지만 왜인지 전혀 밉지 않았다.

나는 여행 내내 섬선의 진정한 '와우'적 요소는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있다고 느꼈다. 지나가는 길에 친구의 집에 들렀더니, 잠옷 차림의 친구가 라면도 끓여주고 반찬도 내어주는 격이다. 모두가 화려한 바캉스룩 대신 편안한 옷을 입고, 호핑 투어는 고사하고 특별한 놀이도 없지만 물안경과 튜브만으로 행복한 곳이다. 남녀노소 해변에서 호텔까진 당연히 맨발이고, 어린이들은 끝없이 바다와 모래 사이를 뛰어다닐 때 어른들은 야자열매나 캔맥주를 들고 익어가는 오후를 만끽한다. 그 옆엔 오늘 조업을 쉬는 어선들도 쉬엄쉬엄 하자며 모래사장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분명히 바닷가지만 비치보이스의 'Surfin U.S.A'보다는 존 레논의 'Imagine'이 훨씬 어울리는 곳. 여전히 베트남의 더위는 식을 줄 모르고, 나는 캔맥주를 한 손에 들고 '바로 이거지!' 하며 섬선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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