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팔았다. 그 외에도 할 일은 많았는데, 차를 파는 일만큼 단순하고 기계적ㅡ마치 매일 같은 서류에 직인을 찍는 동사무소 직원처럼ㅡ으로 처리되는 게 아쉬운 일은 없었다. 여행 경비를 위해서 그것이 불가결한 일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차를 파는 일만큼은 좀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긴 시간을 공들여 이뤄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차창을 경계로 떠나고 남겨지는 두 연인이 손을 흔들며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입금 확인되셨죠? 그럼 갑니다.”
2년간 내가 줄곧 시동을 켜고 좋아하는 음악을 튼 뒤 기어를 넣고, 잠든 아기라도 깨우듯이 부드럽게 액셀을 밟던 그 자리에 탁송 기사님이 앉아 있었다. 차창 너머로 떠남과 남겨짐의 주체는 쉽게 바뀌었고, 나는 하마터면 손이라도 흔들 뻔했다.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기사님 말대로 입금이 확인되면 주인은 바뀌는 법이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화폐 경제의 기본 원리 아닌가. 그렇다면 난 1,440만 원으로 여행의 주인이 된 걸까?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멋지다.”, “어디부터 가는데?”, 그리고ㅡ미안하게도ㅡ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본인들의 여행담이다. 멋지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ㅡ내가 무슨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따온 것도 아니잖나ㅡ어쨌든 칭찬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니 웃고 말았다. ‘어디’부터 가는지는 정말로 정하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가고 싶은 곳들이 몇 곳 있지만, 언젠가 가보면 될 테니 언제 어디부터 가서 어디로 향할지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었고 ‘여행’이라는 테마 안에 정확성과 완벽성을 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내 자유에 있어 흠이 될 때가 많았으니까, 단순하게 ‘여행이 하고 싶다’ 느꼈던 그 테마를 유지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본인들의 여행담을 들을 때는 확실히 여행이란 평범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이구나, 괜히 듣는 이로 하여금 들뜨고 설레는 마음까지 유발하는 힘이 있구나 생각했다.
앞에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조선소 전 동료였던 강 형이 스페인에서 하룻밤 만에 수백만 원을 깡그리 털린 여행담은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강 형이 술에 취해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덩치들이 접근하여 묻더란다. “너 한국인이야?” 살짝 긴장한 강 형이 그렇다고 하니 “나 한국인 정말 좋아해, 내가 한 잔 살게. 같이 가자!”고 하더란다. 어쨌든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강 형은 그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술집에 가 약을 탄 것으로 추정(거의 확신)되는 술을 한 잔 얻어먹고, 다음 날 아침 길바닥에서 개털이 된 자신을 발견한 것인데 현금은 말할 것도 없고 ATM에서 땡전 하나 남기지 않고 인출해 갔더란다. 여행담...이라기보다 사고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만, “안 죽은 게 다행이지.”라며 씁쓸하게 웃던 강 형의 모습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면 주소를 알려 달라던 강 형, 잘 지내시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내 단순한 ‘여행이 하고 싶다’는 결심의 과정을 간단하게 말하면, 내 안에 실존하는 순수한 정열을 꺼내 보고자 함이다. 그동안 수줍고 겁이 나서 백스테이지에 숨어있던 ‘무언가’를 꺼내어 무대 위로 올려놓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과연 그것이 어떤 춤을 출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라는 재미없고 진지한ㅡ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한ㅡ질문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 답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나를 정의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름과 나이부터 어떤 학교를 나와 무엇을 전공했고, 무슨 일을 하며 이런 취미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재산과 사회적인 지위, 또 인간관계를 가졌는지 등 말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대부분 한 인간으로서 창조성과 순수성이 전적으로 배제된 키치적인 것들이었기에 나는 자기혐오를 느꼈다. (물론 키치적인 것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나’와 첫 만남에 돈 꽤나 있어 보이는 ‘나’에게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왜요?”라고 반문하자 조르바는 그놈의 ‘왜요’가 없으면 말을 할 수 없냐며 다그치고 이렇게 말한다. “가령 날 요리사라고 치쇼. 난 수프를 만들 수 있어요. 당신이 들어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도 못 해본 수프를.” 그렇다. 한 그릇의 수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성이, 그리고 수프에 담긴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비(非)키치적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잘 설명한다는 걸 조르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르바가 ‘요리사’건 아니건 말이다.
그럼 조르바는 됐고, 나는 뭘까? 이때마다 나는 자주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언젠가 ‘세계테마기행’에서 본 적이 있는, 본 순간 그 고요한 설국의 정경에 사랑에 빠져버린, 세상에서 가장 추운 마을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오이먀콘’이라는 마을에 내가 아무것도 없이(개털이 된 강 형처럼) 문자 그대로 내던져진다면 나는 도대체 뭘까? 한 인간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 외부로부터 나를 정의하고 지탱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 말이다. 수중에 1,440만 원이 있더라도 수프 한 그릇 만들 수 없다면 삶 이전에 생존이나 가능할까? 무신론자인 내가 어느 교회라도 들어가 신을 들먹이며 벌거벗은 한국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다정한 이들을 찾아다니게 되진 않을까. 나의 ‘수프 한 그릇’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순간이 와도 내가 잃지 않을 것, 내게서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다. 행복의 양상은 저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 바탕에 자유와 사랑이 있다. 나는 자유롭기를 바라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 나갈 테마이고, 이 생각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지점에서 난 불현듯 여행과 에세이를 떠올렸다. 무대 위로 올려놓아야만 하는 그 ‘무언가’의 등을 앞장서서 떠밀어 줄 것들 말이다. 신의 계시처럼 어느 날 불쑥 떨어진 것은 아니었고, 말했듯이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마인드맵이라도 그리고 있자니 어느 순간 명확한ㅡ이라고 할까, 어쨌든 구름 사이 해가 나듯 추상적인 것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ㅡ해답 비슷한 것이 차례가 되어 떠오른 것이다. 그저 나의 내부로부터 순수하게 뿜어져 나오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1년 정도 맘껏 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러고 나니 결심은 의외로 쉬웠다. 여행 중일 때 나는 언제고 순수하고 충만한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자유와 사랑이라는 테마를 충실히 추구해가고 있구나’라는 실질적인 감각이었다. 여기서 누군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당연히 좋겠지’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가 느낀 순수한 기쁨이 당신이 느낀 단순한 기쁨보다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이며 고차원적이라고 얘기한다면 사실도 아닐뿐더러 나를 단순하게 보는 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은 변명이 될 뿐이다. 그저 나는 여행 중 느꼈던 그 실질적인 감각이 나의 내부에 ‘실존’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세이를 떠올린 건 작년 말 운 좋게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다. <영도의 향기>라는 프로젝트였고, 당시 20만 원(과분한 금액이다.)을 받고 부산 영도를 살아낸 이들중 하나로서 에세이를 한 편 기고했다. 뭔가를 써본 것은 이십 대 초반 시에 심취해서 한동안 시를 몇 편 지어본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 예쁘고 있어 보이는 단어들만 조합해 내가 근본적으로 접근한 적 없는 감정들을 담아 시를 짓는 게 순수하지 않고 역겹게 느껴져 관두었더랬다. 그러다 스무 살부터 근 10여 년에 걸쳐 내가 울고 웃고, 부서지고 성장한 배경에 있는 영도에 관한 에세이를 청탁받아 ‘영도기행’을 쓰게 되었는데, 고작 A4 용지 2매를 채우는데 나름대로 많은 고뇌가 필요했다. 별 볼일 없는 글이지만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한, 즉 거짓 없이 나를 통과한 감정만을 썼다는 것과 그걸 써 내려가는 동안 마치 트램펄린에서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튀어 오르는 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을 늘 유지했다는 것이다. 20만 원의 원고료나 마감일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그 글을 재밌다고 읽어주던 친구들 덕분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이때쯤 문장의 유려함과 관계없이 순수하고 진실된 문장은 힘이 있구나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한동안 일상에 쫓겨 에세이란 건 쓸 생각도 못 하던 중에, 사랑하는 이에게 에세이 형식의 편지를 몇 번 썼고 그 편지는 둘의 암호가 되고, 일종의 고백이 되었다. 순수하고 진실된 문장은 힘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을 맘껏 써보고 싶다.
내일이면 출국이다. 내 옆의 그녀를 보고 있으면 세상일이란 건 당최 아무렴 어때, 어떻게든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실질적인 감각으로 항상 외부의 많은 시계들로부터 쫓기며 사는 내가 그 모든 시계를 내려놓는 해방감이다. ‘나란 무엇인가?’ 물으면 ‘지금’, ‘여기’로 대변되는 ‘실존’만이 남는 것이다. 여행과 에세이라는 형식을 빌려 가슴에 영원히 남기고픈 자유와 사랑. 나의 ‘수프 한 그릇’엔 그런 걸 열심히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