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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l 04. 2023

엄마, 디지털카메라가 뭐야?

 첫째 아이가 책을 읽다가 물었다. 

 "엄마 디지털카메라가 뭐야?"

 "네가 갖고 있는 카메라. 그게 디지털카메라야." 

 "아~ '그냥 카메라'?"

 "응...... 그냥 카메라......"


 "근데 디지털카메라 말고 다른 카메라도 있어?"

 "응. '필름 카메라'라는 게 있어."

 "그게 뭐야?" 

 "그게 뭐냐면......"




 카메라를 처음 손에 잡아본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가을 소풍 전날 아빠가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를 빌려주셨다.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주며 당부를 하셨다. 

아무 사진이나 막 찍으면 안 된다. (필름  개당 사진 개수가 정해져 있으니 아껴 써라.) 

되도록 풍경사진보다는 인물이 있는 사진을 찍어라. (풍경만 찍어놓으면 나중에 봤을 때 다 그게 그거다.)  

필름을 교환할 때 꼭 해를 등지고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여태껏 찍은 사진이 다 날아간다.)

 혹시 필름을 다 쓸 경우를 대비해서 교체하는 방법도 다 쓴 필름으로 두 번이나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가르쳐 주셨다. '어른'들만 쓰던 카메라를 내가 써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앉고 소풍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소풍 내내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친구들 사진도 엄청 찍어주는 바람에 필름 두 통을 다 쓰고 왔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본 건 중학교 졸업식 때였다.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아빠 꺼라며 디지털카메라를 가져왔는데,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필름이 없는 카메라여서 사진을 수 십장씩 찍어도 필름을 바꿀 필요도 없다고 했다. 아이들 모두가 그 친구 주변에 모여서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신기한 새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눌러보고 싶어서 서로 차례를 기다렸다. 

 고등학교 1학년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나도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되었다.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넣은 날 몹시 기뻐서 친구랑 집 거실에서도 부엌에서도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놀았었다. 

 새로운 카메라인 디지털카메라 앞에서 아빠가 알려주신 주의사항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찍고 싶은 대로 다 찍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우면 되었다. 혹시나 빛이 들어갈 까 필름이 상할까 조마조마하며 번거롭게 필름 교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눈을 감아서 아빠에게 자주 혼난 나에게 디지털카메라는 단순한 신기한 물건을 넘어 '구세주'이기도 했다. 여행 때 좋은 곳을 가면 아빠는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문제는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내가 눈을 감는 것이었다. 아무리 눈을 뜨고 있으려 해도 플래시가 눈이 부셔서 그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때마다 아빠는 사진 찍는데 눈 감았다며 혼을 내셨다. 

 그렇게 연달아서 혼이 나고 나면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는 눈을 감은 채로 찍혔는지 바로 알 수 있었고 다시 찍으면 되었다. 필름을 아낄 필요가 없으니 플래시가 터질 때 그냥 여러 장을 연달아서 찍어도 되었다.(그러면 그중에 적어도 한 장은 눈을 뜨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산 이후로 나는 필름 카메라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이다. 아빠가 처음 카메라를 빌려주셨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첫사랑처럼. 그런데 아이에게는 디지컬 카메라가 그냥 '카메라'가 되어 버리는 되어버리는 이 순간이 뭔가 어색했다. 

 이번 여름에 휴가를 갈 때는 아이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하나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  

 사진을 찍고 바로 인화할 수 없어서 필름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기다리고 그 필름을 사진관에 맡겨서 다시 현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느린 시간을 네가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사진 한 장을 찍을 때 구도도 포즈도 좀 더 고심하면서 찍는 그 고민의 시간을 네가 가져봤으면 좋겠다. 

 필름 때문에 무한대로 찍을 수 없으니 그 한정된 필름 안에서 내가 꼭 찍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는 결정의 시간도 네가 가져봤으면 좋겠다. 

 기대했던 사진이 눈을 감고 나오거나 귀신처럼 눈이 새빨갛게 나오거나 찍힌 줄 알았는데 사실은 셔터가 제대로 안 눌려서 찍히지 않았거나 하는 실망의 순간도 네가 한 번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나한테는 여전히 필름 카메라가 '그냥 카메라'인데 

나중에 네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너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카메라가 '그냥 카메라'일까. 

그때는 필름 카메라가 박물관에나 존재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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