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지난달 미술학원 선생님이 아이 작품을 미술대회에 출품하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아이도 좋다고 해서 출품했었다. 그 이후에 잊고 있었는데 어제 아이가 해당 미술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다고 미술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미술대회 이름은 '전국ㅇㅇㅇㅇ대제전'이었다. '전국'과 '대제전'이라는 단어 때문에 대회 이름이 매우 거창하게 들렸다.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많은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대회구나'였다. 아이가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건 아니었고 무난하게 그리는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대회인지 찾아보니 상 종류가 매우 다양한 대회였다. 대상, 각학년 1등 상, 최우수상, 우수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 및 입선이 있었다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또는 '금상, 은상, 동상'은 들어봤는데 이 두 종류의 상이 공존하는 대회라니. 상 종류만 봐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상을 주니 많은 아이들이 기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OO아~ 저번에 미술대회에 낸 그림 있지? 그거 상 받았대~"
"아~ 근데 무슨 상이야?"
"동상이야."
"동상이면 몇 등이야?"
"응 글쎄~ 등수는 잘 모르겠는데 OO이가 열심히 해서 상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야."
"트로피 주는 거야?"
"트로피는 만드는 데 돈이 꽤 들어. 그래서 대부분의 대회에서는 트로피는 잘 안 줘. 아마 종이로 만든 상장을 줄 것 같아."
우리 엄마는 매우 현실적인 분이어서 어릴 때 내가 상을 받아도 웬만해서는 감동하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기뻐서 집에 상장을 가져왔는데 정작 엄마는 '당연하다, 큰 상이 아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셨다. 그런데 반대인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나는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있는데 정작 아이는 2% 부족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국'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OO이가 유치원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거는 반 친구들 중에 받는 거잖아. 그런데 이거는 전국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거야. 그러니까 정말 대단한 거지. 엄마는 진짜 기뻐. 잘했어 OO아."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세계 어린이들 중에서 뽑힌 거야?"
"세계 어린이들은 아니고 우리나라 어린이들 중에 뽑힌 거야."
아이는 다소 실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나는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였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 어린이가 너무 많아서 미술대회를 열기가 어려워. 우리나라 유치원생 중에서 상 받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아이는 어제 '전국'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내 뉘앙스를 보고 규모가 큰 대회라고 느낀 것 같았다. 그런데, '서울'도 '전국'도 아닌 '국제'라니. 나는 어릴 적에 전국 경시대회에서 수상하는 꿈은 잠시 가져본 적은 있지만 '국제'대회는 꿈을 꿔본 적 조차 없었다. 그런데 7살 아이가 '국제'대회를 꿈꾸다니. 놀라우면서도 귀여웠다.
요새여기저기 나오는 인재상에 보면 '글로벌한 인재'라는 문구가 종종 보이던데, 아이는 정말 요즘 시대 사람인가 보다. 하긴 장래희망이 NASA에서 일하는 것이니 글로벌해져야겠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별생각 없이 썼던 독후감으로 교내최우수상을 받은 후에 1-2년간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내가 바란 건 딱 그 정도였다. 이번 수상을 통해 미술수업 시간이 아이에게 좀 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바람을 뛰어넘어 아이에게는 글로벌한 인재가 되기 위한 자극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