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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l 10. 2023

나의 꼬리뼈로 만든 아이

 본과 3학년 산부인과 실습을 돌 때였다. 처음으로 자연분만을 참관하였다. 숭고한 출산 장면을 상상했지만 태아가 엄마의 '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저러한 과정을 겪겠구나 싶었다. 절대로 자연분만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틀 뒤에는 제왕절개를 참관하였다. 아랫배에 최소한의 절개를 하고 양쪽 옆으로 세게 당기는 가운데에 뱃속 장기를 지나 자궁을 열고 태아를 꺼내는 모습은 아름답기보다는 거칠었고 피가 낭자했다. 제왕절개도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과 레지던트 과정 동안 환자가 갑자기 나빠지고 때로는 한 달 내내 침대에 누워서 자 본 기억이 거의 없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출산 장면에 대한 공포스러운 기억들은 희미해졌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하루면 끝날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는 임신과정 내내 순하디 순했다. 임신 초기 약간 메슥거리는 거 외에는 입덧 증상도 거의 없었다. 하혈도 없었다. 진통도 평일이 아닌 주말에 왔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날 때쯤 아랫배가 아파왔다. 강약을 두면서 기분 나쁜 느낌으로 계속 아팠다. 이게 진통이구나 느낌이 왔다. 이번주를 마무리하고 출산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시간쯤 지나니 진통의 강도가 점점 강해져 갔다. 이 정도면 산부인과에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첫째라 진통시간이 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병원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건장한 아들을 출산했다. 경막 외 마취가 잘 되어서 예상보다 통증 심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출산한 지 한 시간쯤 뒤에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랑 녹두전 그리고 귤을 사들고 병원에 도착하셨다. 첫째라 내일 새벽쯤에나 나올 줄 알았는데 빨리도 낳았다며 웃으셨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한 시간쯤 앉아있다가 누우려는데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를 정도로 꼬리뼈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취가 깨면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어 저녁까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어서 앉아보아도 아까처럼 너무나 아팠다. 이상하다 싶어 다음날 X-ray를 찍어보았다. 

 X-ray 결과 꼬리뼈(미골)가 부러져 있었다. 뼈를 깎는 고통도 아니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었다니. 출산을 하다 꼬리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상상 못 했다. 담당 산부인과 교수님께서도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남편이 급하게 중간이 동그란 모양으로 뚫려있는 도넛 방석을 사 왔지만 도넛 방석에 앉으면 통증이 약간 줄어들 뿐 없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3개월의 출산휴가 내내 두 가지 자세 밖에 할 수 없었다. 눕거나 서 있거나. 밥도 서서 먹고 수유도 서서 했다. 은행에 가도 보건소에 가도 의자를 두고 서 있으니 다들 앉으시라는 말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꼬리뼈가 부러져서 서 있는 게 편해요.

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3개월이 지나 직장에 복귀를 하였다. 통증은 큰 호전이 없었다. 일을 하려면 의자에 앉기는 해야 할 테니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봤다. 수건 하나를 여러 번 접어 작은 네모로 두껍게 만들어서 허벅지 밑에 깔고 엉덩이 부분은 띄운 채 약간 앞으로 기운듯한 자세가 통증이 제일 덜했다. 그렇게 불안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일하기 시작했다.  

 분과장 교수님 3개월 동안 자리를 비워놓고 후유증까지 안고 돌아온 내가 신경에 거슬것 같았다. 아침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수술이든지 다른 치료든지 뭐라도 해서 완치시켜 오라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다. 여러 의사들이 있는 자리였다.

 사실 교수님도 나도 알고 있었다. 꼬리뼈 골절로 인한 통증은 무얼 한다고 해서 빨리 낫는 게 아니라는 걸. 느린 회복 때문에 속상하고 눈치도 보여서 의기소침해 있던 가운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서러웠다. 근하고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네가 아무 문제 없이 태어났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임신기간보다 훨씬 힘든 시간들이 느리게 흘렀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갔다. 3개월이 더 지나 출산한 지 6개월쯤 지나자 불편하게나마 아무런 도구 없이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어디 갈 때마다 수건 뭉치를 들고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꼬리뼈가 부러져 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좋은 점도 있었다. 꼬리뼈 골절이나 허리뼈(요추) 골절이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얼마나 아픈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고 어떠한 자세로 침대에 눕고 일어나야 통증이 훨씬 덜한지 환자들에게 시범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수년이 지난 지금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방석 없이 방바닥에 오래 앉아있지는 못한다. 아이는 꼬리뼈를 부수고 나온 아이답게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에너지를 칸으로 표시할 수 있다면 나의 에너지는 세 칸, 아이의 에너지는 열 칸도 넘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이는 오늘도 넘치는 에너지만큼이나 넘치는 기쁨선물해 준다.




첫째 때 꼬리뼈가 부러지고도,

나는 둘째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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