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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l 20. 2023

오늘도 늦게까지 엄마를 기다립니다.

내가 그랬고 너도 그렇구나.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아이들 배웅을 해준다. 지난달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는 내가 출근길에 나서자 둘째 아이가 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엄마, 비가 많이 와. 조심해"

 아이가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을 할 때면 순간 뭉클하고는 한다.  


 일 저녁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면 오늘은 내가 직접 둘째 아이를 하원시키겠다고 마음 먹지만 쉽지가 않다. 일이 퇴근시간에 땡 하고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유치원 문 닫을 시간 10-20분 전에야 유치원에 닿는 경우가 많다(더 늦어서 내가 직접 못 가는 날도 허다하다.).

 유치원에 데리러 가면 1층 유리창 너머로 아이가 보인다. 아이가 수업받는 교실은 원래 다른 층인데 원 전체에 아이들이 두세 명만 남으면 유치원 1층 현관 가까이에 있는 인형의 집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다가 나오는 것 같다. '나머지반' 같은 느낌이다. 내가 데리러 가면 아이는 유치원 안에서 가방을 메는 순간부터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아침, 둘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엄마는 왜 매일 늦게 와?"

 순간 당황해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둘째 아이가 크게 예민하지 않고 잘 웃는 편인 데다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린다고 해서 아이가 그냥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다 떠나고 끝까지 남아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여태껏 말은 안 했어도 속상했었나 보다. 그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다 오늘에서야 툭 하고 내뱉은 것 같아 가슴이 쓰렸다. 


 아이의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가장 큰 이유는 어릴 때의 내가 순간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 었다. 그래서 하루 중 엄마가 없이 보내는 시간이 매우 길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는 많은 시간을 '혼자' 집에 있었다. 매일 저녁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늦는 게 싫었다. 불 꺼진 방들을 보며 그 어둠이 너무 무서웠다. 혼자 있을 때는 방문을 다 닫은 채 거실에 앉아 있었다. 가끔 정전이라도 되는 날이면 다시 불이 들어올 때까지 거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공포에 떨었다.

 매일 혼자 있는 내가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그 당시 'OO이랑 엄마랑'이라는 제목의 공책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 공책에 이런저런 말들을 적고는 했다. 속상했던 일, 좋았던 일 그리고 그 외에도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들. 엄마의 답장이 있는 날이면 너무 기뻐서 읽고 또 읽었다.

  어젯밤 거실에 어질러진 아이 책을 정리하다 책장에서 그 공책을 발견했다. 엄마가 최근에 이사하면서 내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 뭉치를 발견했다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일기장 사이에 공책이 끼어있었다. 30년이 다 된 공책인데 이렇게 다시 보다니 두근거렸다.

 첫 페이지를 열어보니 어느 해 11월 8일 자로 '내가 엄마에게 불만인 점'이 주르륵 적혀있다. 그중에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나 혼자 현관문 열고 들어올 때. 내가 아픈데 나갈 때' 

 엄마는 다음날인 11월 9일 새벽 2시 35분에 답장을 써주었다.  

엄마도 엄마의 생활이 있는 거니까.
네가 지금은 엄마랑 같이 있고 싶겠지만 이다음 네가 어른이 되면
너 또한 엄마와 노는 시간보다는
밖에서 네 인생을 만들어 가기에 더욱 바쁠 거란다.


엄마가 그 당시에 써준 글. 이 글 시작 줄에는 '11월 9일 새벽 2시 25분'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나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당시에 엄마가 써준 글이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그다지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와 이렇게 글을 주고받던 시절, 엄마는 지금의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나에게 답장을 쓰고 있었을 엄마 모습을 상상하니 지금의 나와 겹쳐 보인다. 새벽 2시가 넘어 피곤한 상태에서도 잠든 나를 보며 엄마는 공책에 글을 쓰고 주무셨겠지. 어떻게 쓰면 본인의 마음을 딸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쓰셨겠지. 

 30여 년이 지난 이제야 그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천천히 스며들며 아파온다.


 아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나'를 발견하였고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하였다.

엄마의 글을 읽고 쓴 나의 글이다.


 



네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는 엄마가 시간이 부족하고

엄마가 너를 필요로 할 때는 네가 시간이 부족하겠지.


우리 함께 보내는 시간만이라도 더 많이 웃으며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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