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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n 16. 2023

암 표지자가 상승하였습니다.


 이틀 전,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서까지 처방을 내고 있었다. 입원 환자 중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세 명이나 있어서 마음이 답답하기도 버겁기도 한 상태였다.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건진센터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다음 문장을 읽었다.

지난번 직원 검진 시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CA 125 수치 상승 소견이 있어 진료가 필요함을 안내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툭. 심장이 떨어졌다. 곧바로 혈액검사 결과를 열어보았다. 새빨간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CA 125 62.1 U/ml.  

 정상 상한치의 2배에 가까운 숫자였다(정상 범위 35U/ml 이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였다. 난소암.

 '혈중 난소암 표지자 혈액검사인 CA125 가 증가되어 있습니다. 난소암에서 상승할 수 있지만 이외에 췌장암, 폐암, 유방암, 자궁내막암, 대장암, 생리, 임신, 자궁내막증에서도 상승할 수 있고 정상인에서도 1% 정도에서 상승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산부인과 진료 및 골반초음파 등 정밀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결과지에는 이렇게 친절한 설명이 쓰여있었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이미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검사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한 달에도 몇 번씩을 처방하는 검사인데 모를 리 없었다. 

 난 아직 나이가 젊다. 난소암의 위험인자가 없다(가족력이 없고, 늦은 나이에 초경을 하였으며 출산도 하였다. 아직 폐경도 하지 않았다.). 자궁 근종이나 난소 낭종 같은 흔한 산부인과 질환도 진단받은 적이 없다. 근데 내가 왜? 대체 왜? 갑자기 집에 있는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내가... 그런 거라면...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거기서 생각을 중단했다. 우선 수치가 상승한 다른 원인을 생각해봐야 했다. 고민을 하다 문득 검사를 한 날이 생각났다. 생리 3일 차 되는 날이었는데 직원 건강 검진은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어떨 수 없이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 생리 중에 오를 수 있지. 그럼 오를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다음날 오전 급한 병동일부터 마무리하고 혈액검사실로 갔다. 검사 결과는 하루가 지나야 확인이 가능했다. 이 불안은 오늘도 진행형이었다. 오후 회진이 끝나고 과장님이 물어보셨다(전날 과장님께 CA 125가 올랐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오늘 검사했어요? 괜찮을 거예요."

 어제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신경 써주시는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교수님의 눈빛이 너무 따스해서 순간 두려웠다. 종양내과 환자를 진료하실 때 그 자애로운 눈빛을 여러 번 봐왔기에 순간 내가 환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다섯 살 둘째 아이가 또박또박 핀잔을 준다. 

 "엄마가 오늘 유치원 가방에 물병 안 넣어줬더라. 넣어줬어야지."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오늘 숟가락 젓가락 안 넣어줘서 환경오염 되게 일회용 썼잖아."

 나름 가족들에게 전혀 티를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애들한테 이런 식으로 티가 났구나. 늦게 퇴근한 남편이 평소처럼 물었다. 

 "오늘 일 잘하고 왔어?" 

 "응... 잘하고 왔지." 

 아직 재검 결과도 안 나왔는데 남편에게까지 이 불안을 굳이 퍼트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이 되었다. 오전 6시부터 검사결과를 열어보고 또 열어보았다. 오전 8시 40분이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CA 125 13.0 U/ml. 정상이었다.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아가들아, 엄마가 수저통이랑 물병 다시 잘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야. 





+ 오늘의 교훈 :

생리 중에는 되도록 건강검진을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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