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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n 27. 2023

비니를 쓴 교수님

 인생에서 스승님을 한 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교수님이 있다. 레지던트 3년 차 때부터 지금까지 순간순간 진심으로 나를 아낀다는 걸 느끼도록 해주는 분이다. 5년 전 내가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도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고 많이 애쓰셨다.

 하지만 나보다 레벨이 많이 높고 많이 바쁜 분이다 보니 안부인사 문자 하나를 보내는데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별 거 아닌 내용인데,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 번쯤 생각이 나도 정작 연락은 한두 번 드리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 통계 관련 강연을 듣다가 교수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렸다. 교수님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답해주셨다.

우리 이쁜 OO이. 잘 지냈니? 애기 많이 컸지? 너 닮아서 얼마나 예쁘겠냐^^ 사람이랑 일에 시달리지 말고 뭐든 즐겁게 해라. 이쁜 것. 건강 조심하고~♡

 

 그날따라 '사람이랑 일에 시달리지 말고'라는 구절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마치 교수님이 무언가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내 '내가 괜히 예민한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접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었다. 그날은 내 생일 저녁이었다. 스타벅스 상품권과 함께 교수님으로부터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이 왔다. 마침 그즈음에 교수님 생각이 자주 나던 터라 요새 교수님 생각이 많이 났다고 바쁜 와중에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에 대한 교수님의 답은 간결했다.

나 안 바빠. 잘 지내고 있어라.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의 답이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이때도 '내가 예민한 거겠지, 바쁘셔서 그런 거겠지.'하고 넘겼다.

  올해 봄이 되었다. 교수님께 오랜만에 안부 문자를 드렸다. 이 날 교수님의 답장은 이상한 느낌이 전혀 없이 평소 같았다. 그래 작년 여름이랑 가을에 내가 예민했던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5월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몇 주 뒤 강남 신세계 백화점 레스토랑에서 교수님을 뵈었다. 항상 그런 것처럼 날 보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교수님은 베이지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얼굴이 작고 동안인 교수님에게 잘 어울렸다. 다만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교수님'과 '비니'라는 두 단어는 어색한 조합이랄까.

 밥을 먹으며 음식이 맛이 좋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지냈다 등등의 얘기로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작년에 좀 아팠어.

 순간 가슴이 툭. 하는 느낌이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쓰러졌다. 아프다.' 이런 용어를 많이 쓰지만 의사끼리 대화를 할 때 병명이나 관련 증상을 주로 얘기를 하지 뭉뚱그려서 '좀 아프다'라는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교수님의 입술을 쳐다보며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가슴에 혹이 하나 있는 건 알고 있었어. 크기가 작아서 초음파로 추적검사 하고 있었거든. 작년에 바빠서 검진 날짜를 놓치고 4개월쯤 뒤에 검사를 하러 갔어.
그런데 좀 이상하다고 조직검사를 하자고 하더라고.
검사했더니 유방암으로 나왔어.

 

 교수님이 말씀을 이어갔다. 작년 6월에 수술을 받았고 수술 날짜 당일만 근무병원에 휴가를 내셨다. 그런데 수술 조직검사 결과 주변 림프절 전이가 하나 나와서 어쩔 수 없이 3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는 작년 7월에 시작해서 그해 9월까지 총 3개월간이었다. 그 이후에는 항호르몬제만 복용하고 있고 앞으로 몇 년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머릿속 퍼즐이 맞춰졌다. 작년에도 올해도 교수님 문자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수술받고 7월에 항암치료를 시작하였으니 작년 7월은 교수님이 한창 병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교수님의 문자에서 '사람이랑 일에 시달리지 말고 뭐든 즐겁게 해라.'라는 구절이 굳이 마음에 걸린 이유가 있었다.

  작년 9월엔 항암치료 막바지여서 많이 지쳐갈 때쯤 굳이 생일 축하한다고 연락을 하신 것이었다. 문자를 빨리 종료하고픈 기색이 느껴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다 빠져서 아직 머리가 덜 자랐어.
그래서 밖에서는 모자를 쓰고 다녀.



 아. 비니가 그 이유 때문이었구나.


 작년부터 올해까지 교수님과 연락을 할 때마다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다는 걸 난 느꼈다. 하지만 내가 예민하다고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까. 교수님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죄송했다.

 결과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스승님이라고 말로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힘들 때 교수님의 격려와 보살핌을 받았는데 난 해드리기는 커녕 교수님의 고통을 채 알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물색없는 문자만 보냈을 뿐이었다.

 이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에 와서는 어떤 말도 사치스러울 것만 같았다.

 "아...... 그러셨군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라는 말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왔다. 교수님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전해졌다. 교수님은 손님이 북적거리는 샌드위치 집을 데려가시더니 이 집 빵이 맛있더라면서 아이들 갖다주라고 샌드위치를 3개를 포장해서 내 손에 들러주셨다. 교수님은 지하철역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서야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였다.


오늘도 교수님께 문자를 쓰고는 보낼지 말지 고민한다. 예전에는 바쁜 교수님에게 누가 될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혹시나 내가 교수님 암환자로 바라봐서 갑자기 연락을 자주 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우려까지 더해졌다. 어렵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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