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냉면이 먹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주말 저녁,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 근처 냉면집에서 냉면을 포장해 오려고 혹시나 하고 전화해 봤더니, 코로나 이후 아홉시면 문을 닫는다는 거다. 아들이 오는 시간은 밤 열시 반이므로 미리 사놓을 수도 없고... 마트라도 가서 대기업 제품을 사와야겠다 마음먹는 찰나,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결과적으로 그 전화는 받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냉면을 사러 간다고 했더니,
"에이, 대기업 꺼 맛없지!" 하며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기다려 보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나타났을 때, 갑자기 저 사람의 고질병을 놓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원망해야 했다.
아, 실수했구나.
들어올 때부터 뭔가 싸하더니만, 냉면 (면만 들어있는 거)과 쫄면 (면만 들어있는 거) 대용량을 또 벌크로 사왔다. 나의 망각으로부터 비롯된 경솔함을 탓하며 "육수는?" 했더니...
대기업 제품 맛없다더니, 중소기업 제품을 내밀며 냉면 육수는 "이게 맛있어..." 한다.
그, 그래? 니가 원한게 이거였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커다란 의문의 검은 봉지 두개는 뭘까? 아까부터 의심스럽던 찰나, 간길에 오리고기와 돼지 등뼈를 아주 싸게 샀다며 칭찬을 바라는 목소리로, 큰 봉지 두개를 테이블에 펼쳐 놓는다. 그 순간 나는 왜 그것이 맛있는 식재료로 보이지 않고 왠수덩어리로 보이는지, 다시 한번 그 언젠가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렸다.
기껏 맛있는 거 사온다더니, 쌀포대만 한 그물망에 가득 들어있는 꼬막과 석화를 사들고 왔더랬지... 덕분에 크리스마스 내내 비린내 맡으며 닦고 삶고 까고 했던 기억...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결국 다음날 아침에 눈뜨자마자 등뼈 피 빼고, 오리양념하고, 오후엔 내내 감자탕을 커다란 들통에다 데치고 씻고 끓이고 설거지 하고...
아들이 지나가면서 '엄마 감자탕에서 감자탕 냄새가 난다'며 칭찬해 주었다 ;;
너무 많아 반은 형님을 갖다 드렸다.
매번 당하면서도 매번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마는 나자신을 원망하면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마음을 고쳐먹고 감자탕을 야무지게 뜯어먹었다.
마침 나도 먹고 싶던 참이었어...
근데... 그거 끓일 때는전에 읽은 정유정의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한 스릴러, '완전한 행복' 생각이 나서 못먹을줄 알았는데, '읽는 것'과 '먹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먹으면서 깨달았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