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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희 Jun 12. 2023

크리스마스의 악몽

'대용량 성애자'와 산다는 것

한동안 이 버릇을 왜 안하는가 했더니, 주말 밤 열한시에 아들까지 1층으로 내려오래서 잔뜩 장본 것을 들고 남편이 나타났다. 코스트코에 다녀왔다며.

- 뭐? 코스트코를 갔다고??

경계경보 발령이다!


그가 꺼낸 살펴보니 각종  건너온 대용량 피클에 참치, 토마토소스, 골뱅이, 쥬스, 땅콩잼 등등...

그렇다. 그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용량 콜렉터'였던 것이다. 

- 아니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 렇게 많이 ??!!

그의 대답은 여전히 늘 똑.같.다.

- 이거 엄청 싸! 개씩 묶어서 몇천원 밖에 안해!

아 그래... 즘 물가가 많이 오른 걸로 아는데, 너한테는 왜 일절 적용이 안될까??

하는 얘기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란 말을 하고 있는데, 그와의 대화는 도대체가 핀트가 맞는다.


생각해 보라.

저 대용량들을 다 보관하려면 트리도 다시 정리해야 되고, 쓸데없이 많은 자리를 차지함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생필품은 보관할 자리 없어지고, 수납이 뒤죽박죽이 어 물건 하나 찾으려면 온 집안을 번거롭게 다 뒤지고 다녀야 한다. 어떨 땐 있는  모르고 또 사 경우생긴다.

칭 미니멀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상당 스트레스 상황이다.

그렇게 보관해서라도 알뜰히 먹는다면야 그 누구를 탓하. 한 두어번 먹다가 외국애들은 이 짠걸 어떻게 먹냐는 둥, 냄새가 고리고리하다는 둥, 식감이 무르다는 둥 온갖 불평 늘어놓다가 한 일년쯤 지난 후 내가 이거 다 어떡할 거냐 물으면 그제서야 갖다 버리라고...

버리는 건 또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음식물 봉투도 다 돈 주고 사야 하는 것이거늘...

게다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이 상황 굳이 쓰레기를 돈 주고 사서 는 꼴 아닌가.


그중 땅콩잼 정말 미스테리한 품목이다.

이 사람은 코스트코든 이마트 트레이더스든 어딜 가 늘 콩잼을 집어오는데, 도대체 집에 땅콩잼 좋아하는 람이 없고 심지어 본인도 별로 안좋아하면서 왜 그렇게 뻑뻑한 잼에 집착을 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 해전에 사 온 커다란 땅콩잼도 거의 한 번밖에 안먹어 갖다 버리느라, 딱딱해진 잼을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파내고 긁어 겨우겨우 처리한 지 얼마 되 않았는데... 또?

그뿐인가. 온갖 햄에 소세지에, 가뜩이나 냉동실이 꽉 찼는데 고기를 큰 팩으로 종류별로  팩이나 사왔다!

거기다 어마무시하게 큰 피자 두  사왔니... 오다가 너무 배고파서 자기가 한 조각은 차 안에서 먹었다나...

결국 지켜보던 내가 한마디 했다.

- 내가 경고하는데, 배고플 때 장 보러 가지 마!




참 행복해 보이네...;;;



그러고 보니 그 어느 의 크리스마가 떠오른다.

이브에 남편이 뭐 먹고 싶은 거 없녜서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내가) 알아서 사오랬더니, 밤늦게 양손에 파란 비닐 한 보따리 들고 나타났더랬다.


평소 비린 거 입에도 안대는 사람이 갑자기 누구 먹으라고 한 손엔 석화, 한 손엔 꼬막! 오다가 농수산 센터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 이게 지금 크리스마스랑 어울려?

그냥 보따리가 아니라, 진짜 '한' 보따리를 벌크로 들고 나타났으니 황당할 수밖에.

안주거리 사오면 우아하게 와인이나 마시려 했던 나의 작디작은 소망은 말 그대로 소망이었을 뿐.

그날 밤 내내 밥도 못먹고, 석화 닦고 찌느라 비려서 몇 점 먹지도 못하고, 화딱지 나서 혼자 술 퍼마시고 배탈 나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꼬막 삶아 온종일 까고 무치고...

아니, 크리스마스가 원래 이런 거였어?!!

산더미 같은 석화랑 꼬막 껍질 처리 후, 아이들을 불러 조용히 귀띔했다. 황혼이혼 하겠다고...

아이들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 모르겠지만, 그 결심은 지금도 아주, 매우, 강력하게 유효한 편!!

이것만 다 해놓고 서류 떼러 갈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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