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남편과 아이들 학원비며 교육비 등등 부쩍 늘어난 생활비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한달 생활비가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보여주겠다며굳이 폰에서 카드 명세서를야무지게 뒤져설거지하는 내코앞에 들이밀었다.
"아니, 이것 때문에 걱정하란 뜻은 아니고!"라는 친절한 말도 함께덧붙이면서.
나는 수입이 없는 주부인데다 남편이 돈관리를 하고있다 보니,돈 쓰는일에 자유롭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혹은 살림하면서 쓰는 돈에도 늘 눈치가 보인달까.
주말에아이들 치킨하나 시켜 줄라 쳐도 며칠만의 배달인지 주기를 따져가며 주문해야 하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켜도 남편은 매번 배달비가 얼마냐 이 브랜드 치킨은 왜 이렇게 비싸냐 묻고 또 묻는다.
- 이게 이만오천원이나 해? 배달비가 그렇게 비싸? 그냥 내가 가지러 가는 게 낫겠다! 아니, 그냥 시장에서 통닭 사 오는 게 싸지 않아? 기타 등등등.
그냥 정말 순수하게 값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치킨하나 시키는데도 매번 저렇게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 같은 피드백이돌아오다 보니 치킨이나 짜장 외에삼만원 넘는 족발이나 보쌈, 곱창 같은 것은 아예 시킬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어디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하러뷔페 같은 데라도 한번 갈라쳐도,남편은 가격부터 물어보고선 '그럼 셋이 먹고 와. 난 안먹어도 돼~'매번 이런 식이니, 이거 어디 맘 편히 외식이나 한번 하겠느냐 말이다.
그냥 집 근처 저렴한 갈빗집이나 한번씩 가서 먹고 오는 게 우리의 유일한 외식되시겠다.
이렇게 들으면 우리 남편이 엄청 알뜰살뜰한 짠돌이쯤으로 느껴지겠지만,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택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물밀듯이 밀려드는 중이다.
지돈지산이라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또 빈정이 상하는게 인지상정인지라, 오늘은 또 뭐가 온 거냐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어보면...
하나같이 죄다 곧장 한달안에 쓰레기통으로 처박힐 물건들뿐인 거라. 이를테면 유튜브에서 광고하는 실리콘 귀이개, 허접한 치석제거용 도구들, 어디서 만든 건지 처음 본 브랜드의 과자, 기름범벅 맛대가리 없는 납작 만두 한 박스, 만원에 다섯 장짜리 티셔츠 등등... 죄다 어디 을지로 좌판에서나 볼법한 물건들뿐이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그런 걸 대체 왜 사는 거냐 물으면 늘 한결같은답이 돌아온다. 궁금해서 사봤는데, 엄청 싸다는 것이고 특히 '싸다'의 '싸'자에 겁나강조 악센트를 준다.
어 그래? 싸기만 하면 몇개를 사도 상관없다는 거네?
- 아니, 싸다고 계속 사들이지 말고 그냥 제값 주고 좋은걸 좀 사! 나이도 있 는데 맨날 그런 싸구려 티셔츠만 입냐고! 채신머리 없게!
그 말의 속뜻은 우리 치킨 먹는데 배달비 좀 따지지 말고 너나 그런 쓰레기 좀 그만 사들여!!
바로 그 소리다.
그런 내 잔소리가 싫었는지 어느 날부터인가는 아예 집으로 갖고 올라오지도 않고,택배를 1층 아버님집으로 주문해서 거기서 뜯어보고 몰래 모아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아버님 댁에는 각종 청소기며 공구, 전자렌지에 돌려쓰는 (좁쌀 들어있는)보온용양말, 분필처럼 갈아 쓰는 바퀴벌레약 등등등....
내가 오죽하면 유튜브나 한번 해보라고 권했을 정도다. 타이틀은 '쓸데없는 물건 어디까지 사봤니?'나 '사긴 싫지만 궁금한 물건 대신 리뷰해 드림' 둘중 하나로.
돈이 어디서 줄줄 새고 있는 것인지 이렇듯 답이 나와있는데도 허구한날 엉뚱한 곳에다 시비를 걸고 있으니... 저걸 죄다 내가 주문했다고 생각해 보라! 아우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그뿐인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왜 그렇게 호구 노릇을 하는가! 가오 잡느라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꼭 밥사고 술사고... 내가 왜 당신 주변엔 얻어먹는 사람들뿐이냐 물어도 묵묵부답.
얼마 전에는키 큰아들이 학교 의자가 불편해 허리가 아파 선생님 허락을 받고 외부 의자를 갖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남편이 비싸게 의자를 사느니 방석을 하나 놔보는게 어떻겠냐는 거다.
허리가 아프다는데 무슨 생뚱맞게 방석이냐니이미 벌써 라텍스로 하나 주문했다나??
구천 원짜리라텍스...;;
아,무슨 주문 중독자도 아니고 진짜 분노 유발자가 따로 없다.
결국 의자는 의자대로새로 하나 구입했고, 구천원짜리 방석은 너나 앉으라며 남편의자에 살포시 얹어놨는데 어느 날 보니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