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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ung Apr 12. 2022

3.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다


  며칠간은 엄마가 잠든 이후에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금요일에는 이전에 좋아하셨던 일식집을 예약해서 제철이라는 민어 요리를 먹으러 갔다. 연희동에서  오랜 시간 있었던 식당은 그렇게 고급져 보이지도, 낡아 보이지도 않는 그런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홀에 앉아 핸드폰만 하면서 서빙하시는 분만 계속 이리저리 보냈고 우리는 3 방에 앉았다. 방은  따르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만 에어컨은 달달 거리며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나서 얼마  지나 꺼버렸다. 민어 요리는 맛있었다. 민어회는 적당히 꼬슬거리면서 감칠맛이 좋았고, 뱃살 같아 보이는 부위는 기름지지만 고소한 껍질이 붙어있어 먹기 좋았다. 사시미를 베이스로 여러 소스랑 함께 곁들여져 나오는 요리들은 하나같이 생소하지만 나름 먹을만했다. 소주가 당겼다.


 

 이번 주에 있었던 일들을 계속 이야기했다.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다. 이때는 재밌었고 이때는 짜증이 났다. 내 일주일간 일과를 쉼 없이 이야기했다. 말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나는 묻지 않았고 기다렸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엄마는 말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말을 할 수 있을지..." 그렇게 담담하게 시작된 말이었지만 엄마의 눈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이 발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앞으로 괜찮을거라는 마음, 지금은 천천히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꾸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거, 그게, 그 이런 단어들만 나열되는 말들이었지만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이해했다. 하루하루 말이 점점 더 안 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증상이 이렇게 빠른 건지 아니면 엄마가 말을 못 한다는 생각에 더 말하기가 겁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떤 쪽이건, 별로다.



 코가 시큰거리며 눈이 따끔거렸지만 참아냈다. 아니, 잘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시간 동안의 본인의 계획과 생각, 그리고 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엄마는 수년 전부터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기기증을 신청했으며, 자신이 남긴 재산에 꽤 많은 부분을 기부하기로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혀냈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을 나무라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다 알겠다고 했다. 눈으로는 울면서 입으로는 웃었다.



 본인은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치료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1달이 채 못살더라도 괜찮다고 했다.  치매, 언어장애, 기능장애와 같은 일들이 싫어 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전이성 뇌종양은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후가 매우 안 좋다고 한다. 특히 엄마와 같이 크기와 개수가 너무 과도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단다. 이제 다음 주부터 뇌 전체에 방사선을 2주 동안 쪼이게 되는데 운이 좋으면 종양의 크기는 줄지만 각종 장애를 예방하고 수명을 몇 달 연장하는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걷기 좋았다. 여름이 점점 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바람은 선선했고 매미소리도 한풀 죽었다. 식당에서 나와 연희동 골목을 거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간단히 씻고, 9시가 채 되지 않아 잠을 청하기로 했다. 엄마가 캐리어 안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낼 때, 그 안에 책 한 권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제목을 나는 기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


 도통 잠이 오지를 않았다.

 

 솔직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당신이 날 잘 키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만 억지로 다짐하고는 있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0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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