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그 기세를 다해가고 있었다. 매일 같이 내리는 비와, 매일 같이 어색한 우리 가족의 이상한 위화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연희동 자취방이 온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 된지도 2주가 지났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엄마는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 같은 시간에 전뇌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왔다. 치료를 받고 온 날은 여지없이 낮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 치료받고 다시 자고 일어나 넷플릭스를 좀 보다 다시 자는.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반복적인 일상은 사람을 빠르게 그 상황에 적응시킨다. 큰 좌절감을 느꼈던 우리 가족은 이제 각자 자신들의 방법으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딱 1주일, 절반이 지났을 때 엄마의 전담 의사 선생님 진료가 있었다. 연차를 내고, 준비를 했다. 하루하루 의사표현이 힘들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엄마는 본인이 궁금한 점들을 내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였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언제까지인가'였다.
출근 시간보다 이르게 아침을 맞이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도 병원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방사선과에 도착했다. 엄마는 벌써 익숙해진 건지 탈의실에 홀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내게 말 한마디 없이 치료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사선 치료실 앞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나이, 성별은 천차만별이었다. 입원 중인 사람,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 남편과 함께, 또는 거동이 매우 불편해 보이지만 홀로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곳에 매일같이 오는 사람들이었다. 구면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이야기를 하거나 서로의 상태나 가족 이야기를 했다. 그곳에서 나와 나의 어머니만 조용했다. 치료가 끝나고 우리는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 내용은 그다지 특별한 게 없었다. 그저 모든 게 끝을 향해 간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10년이 넘게 엄마를 봐왔다. 본인 기준에서 불필요한 입원이나 치료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둘의 대화는 이런 식이 었다.
-항암 치료를 권한다.
-싫다.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
-싫다.
-약은 먹을 수 있지 않냐.
-싫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얼마나 남았나.
-조심스럽다.
-얼마나 남았나.
-6개월. 정확하진 않다.
-알았다.
엄마는 너무 담담했다. 본인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미련이 남거나, 두려워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계속 느껴오던 엄마의 태도에서는 그랬다. 언제 끝이 나는가, 단지 그것이 중요했다. 의사 선생님이 오히려 어쩔 줄 몰라했지만, 당황했다기보다는 본인이 권하는 치료들의 불확실성이 목소리에 반영된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옆에 우두커니 우산을 짚고 서있었는데, 그 둘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깐의 정적 이후에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굉장히 이상하지만 나도 엄마와 같은 톤, 같은 단어, 같은 태도로 같은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냥.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진료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는 다음 주다. 그렇게 또 소중한 한 주가 지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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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젠가는 찾아온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그래서 특별할 것도, 남들보다 비참해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2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