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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ung Apr 19. 2022

12. 봄이 올까

   좋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우리 집 사고뭉치 막내가 취업을 했다. 그리고는 취업을 하자마자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최대한 빠르게 양가 부모님끼리 자리를 가지고, 날짜도 빠르게 잡고자 했다. 신랑과 신부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행복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정하기로 했다. 나는 항상 동생에게 뭐든 더 늦게 해라, 아직 늦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진심 어린 조언이었지만, 지금 엄마를 바로 옆에서 돌볼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게, 이기적이지만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안한 상황들 속에서 동생은 나름의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반면에 엄마는 이제 너무나 명확하게 기력이 쇠해 보였다. 항상 입맛은 없었고, 걸핏하면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는 나오셨다. 평소 50 중반대를 유지하던 몸무게는 어느새 40 초반대가 되어있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오가는 길도 너무나 고돼서 병원 진료만 간단히 받으시고는 바로 작별인사를 남긴 뒤에 서울역으로 갔다. 같이 보내는 시간은 많아야 반나절도 채 되지 못했다. 작년 8월부터 6개월.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이제 정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는 더 아파 보이고 내 마음도 더 불안해져만 갔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어느 날 메세지가 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냥 올라왔다고 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있는 치료가 없어서 다른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또 한 번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사실은 조금 의아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어떤 치료도 받고 싶어 하지 않던 엄마였는데, 그녀가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 속에 있는 것인지 그 생각이 알고 싶었다. 


 병원 안에서 엄마를 만난 것은 다시 엄마가 구토를 하고 나와서였다.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스키바지에 덩치보다 큰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한껏 움츠린 채로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한 번씩 웃음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병원에 새로운 진료실로 들어갔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병원 식당가에서 따뜻한 순두부를 시켜 먹었다. 나만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 마지막 병원 방문 이후로, 엄마는 결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하셨다. 병원에 있는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당신이라, 나는 다시 한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몰라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결정할 일인 듯 보였다. 서울역에서 그녀를 보내고 나는 서부역 계단에 주저앉아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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