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은 내 생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생일'. 나는 1993년 1월 29일에 태어났다. 내 머리가 유독 너무 커서 엄마는 30시간이 넘게 진통을 하시고 나를 세상에 꺼내놓으셨다. 한사코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그 오랜 시간 우리 가족들을 초조함 속에 가둬놓으셨다. 정말 독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럴까. 분만실에서 나온 내 머리는 모과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 애가 죽는다고 속상해했다. 할머니 시절에는 아이들이 일찍 죽는 건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내 생일은 4월 29일이다. 1년 빠르게 학교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가족들의 선택이랄까. 불법인지 아닌지는 나는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건 아니니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두 개의 생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 진짜 생일은 그냥 우리 엄마랑 동생만 챙기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타고난 귀찮음 탓인지 난 생일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다.
올해는 내 생일 바로 다음이 설이었다. 생일날 엄마에게서 생일 축하 문자와 미역국을 끓여 놓았다는 연락이 왔다. 다다음날 나와 동생은 대구로 내려갔다. 우리는 약초탕이라는 곳에 갔다. 검색해보니 전국적으로 대구 팔공산 주변에만 있는 독특한 시설이었다. 건물에 들어서면 작은 로비 같은 공간이 있고 낡은 모텔처럼 복도에 방문들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이모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고, 나와 동생은 따로 다른 방에 안내를 받았다. 들어선 방은 더더욱 낡은 모텔 같았다. 침대와 화장대, 그리고 작은 냉장고와 음료수가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방보다 큰 욕실이 있었다는 것.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약초 같은 것들을 동생이랑 서로 온몸에 바르고 발라주고, 큰 탕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노곤노곤하게 있었다. 나름 좋았다.
오히려 우리가 엄마보다 늦게 나왔다. 우리는 근처에서 냉면을 먹고 집으로 갔다. 엄마의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동생은 개들을 산책시키고 나는 소파에 누워 빈둥거렸다. 엄마는 요즘 너무 졸리다고 했고 부쩍 자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요가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골반이랑 엉덩이 쪽이 너무 아파서 요즘은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 한껏 찡그린 표정이다.
설날에는 외조부모님 집에 갔다. 모든 가족들이 모인건 아니지만 정말 오랜만에 사촌동생들을 만났다. 막내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었고 나랑 또래가 비슷한 사촌들은 몇 년 사이에 어른들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세배를 하고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별의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제 세뱃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사촌 동생에게 세뱃돈을 주고 어른분들께 용돈을 드렸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던 가족의 어떤 분위기를 흠뻑 느껴버렸다.
잠시나마였지만 모든 걸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22.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