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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ung Apr 19. 2022

14. 하염없이

 엄마는 3월 20일경부터 새로운 병원에 입원하셨다. 치료원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오전엔 뜸을 뜨고 오후에는 마사지나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쉬고 계셨다. 한방 치료를 좋아하셨던 엄마의 취향을 이모들이 대구 전역의 병원들을 뒤져서 찾아주셨다. 그리고는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지난주,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물을 뜨러 가려다 넘어질뻔했고, 병실에 간호사가 가보니 식판이 엎어져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식사를 모두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되지 않아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은 10-20분 남짓했고 핸드폰 볼 기력도 없어졌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너무나 빠르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간병인을 쓰기로 했지만 바로 곧이어 엄마는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되었고, 소변줄을 달고 영양제를 맞으며 버티고 계신다.



 코로나로 면회가 까다로운 지금. 동생이 먼저 면회를 다녀오고 나서 바로 밥이나 먹자고 연락이 왔다. 평소에 한 번도 따로 만나자는 말이 없던 녀석이 그렇다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만나서 담담하게 소주를 한잔 했다. 술도 잘 못하면서 동생은 대낮에 소주를 주구장창 들이켰다.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함께 해서 좋았다고 낯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동생이 다녀간 다음날 엄마는 식사를 조금 하셨다.


  나는 면회를 가지 못했다. 면회를 위해 휴가까지 써가면서 대구로 내려가 PCR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는 바로 발치에서 등을 돌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서울로 올라와 어느 때보다 긴 주말을 보냈다. 2월에 첫 코로나 판정을 받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연히 양성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보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계속 병원에 전화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격리 해제를 하는 다음 주에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간병인 분에게 거의 매일 같이 전화를 한다. 엄마가 오늘은 어떠신지,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아니면 내 목소리라도 들으면 혹시나 조금이라도 힘을 내실까 봐. 듣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말을 한다.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는 괜찮을 거다. 내가 곧 갈 거다. 하지만 넘어오는 소리는 간병인 분의 대답 좀 해보라는 간절한 외침뿐이었다. 엄마는 짜증을 내며 전화기를 계속 밀어낸다고 하신다.


  너무너무 답답하다. 가만히 앉아있자면 속이 끓어오르고 머리가 어지럽다. 계속 옆에 앉아 손이라도 잡아주고 그동안 못했던 말들, 사랑한다고 더 표현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잘 살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 더 엄마를 보고 싶다. 밤을 지새우더라도 5분만이라도 한 번만 엄마 품속에서 잠들고 싶다. 핸드폰을 열어보면 엄마의 사진이 너무 없다. 카톡방의 기록은 왜 올해 2월부터 있는지 모르겠다. 제발 다음 주가 오기 전에 가시면 안 된다는 마음만큼 불안함이 크다. 전화 벨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화는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는 엄마 친구들이나 가족 친지분들의 안부 전화였다. 그분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위로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감정 대신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과 달리 밤하늘은 너무 맑았고, 달은 도로 위 가로등만큼이나 밝았다.

 동생과 나는 영정사진을 준비하기로 했다.


  2022.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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