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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Aug 05. 2022

여름 방학 + 걷는 여름

우리 할아버지는 지구를 구했대!

봄 방학이 없어지고 겨울 방학이 두 달이 넘다 보니 한 달의 여름 방학은 꽤 짧게 느껴진다. 작년처럼 주 2회, 3회가 아닌 매일 등교를 한다고 신나게 학교를 갔던 아이였지만 한 학기를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방학이 다가올 즈음엔 방학을 몹시 기다렸었다. 평일 학원 수업들이 있긴 하지만 조금 계획을 짜서 틈이 날 때 공연이나 전시도 보고 못 만나던 친구를 만나거나 수영장에 가며 방학 2주 차를 알뜰하게 쓰고 있다. 어제와 오늘은 1박 2일 성당 캠프에 다녀왔는데 실외에서 수영모자를 쓰고 노느라 이마를 투톤으로 만들어 안 그래도 까만 아이가 좀 더 장난 가득 까만 모습으로 돌아왔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 세라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선생님들이 보내준 사진들을 볼 때마다 환하게 웃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에 사르르 마음이 녹아내렸다. 저렇게 신나게 물장구치고 함께 옥수수와 수박을 먹으며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내가 언제 보았을까? 왠지 너무 오랜만이라 아이들의 해맑음을 바라보는 뭉클함도 있었다.

 

여름 방학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가장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때이다.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는 캠핑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과 갔던 동네 수영장에서 연신 물을 먹으며 손발이 퉁퉁 붓도록 놀았던 날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다. 온갖 곤충과 벌레들, 동물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햇빛을 듬뿍 먹은 풍성한 열매를 맛보는 여름은 아마도 어린이가 가장 신나는 계절일 것이다.


여름 방학 때 읽기 좋은 동화책 중 하나인 “우리 할아버지는 지구를 구했대” 에서는 스페인에 사는 토마스가 멀리 카자흐스탄에 사는 M과 펜팔로 편지를 주고받는 시점에서 시작해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곤충과 친구가 되고 식물과 대화하며 자연을 보고 배우는 동안 암호 같았던 M의 말을 이해하게 되어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 엮여 있다.

챕터별로 시기를 묘사하는 각 소제목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미루나무 꽃씨가 솜털처럼 휘날리기 시작할 무렵

잎사귀가 다 떨어져, 아직 앙상한 단풍나무에 비가 내릴 무렵

체리가 익어갈 무렵

들판이 클로버로 가득 채워질 무렵

바람에 민들에 홀씨가 흩날릴 무렵

귀뚜라미들이 히스 사이에서 노래 부를 무렵

황조롱이가 하늘을 날며 날갯짓할 무렵

반딧불이가 오솔길을 비출 무렵

여우들이 땅에 떨어진 배를 먹을 무렵

까치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무렵

달팽이가 달팽이 집에서 고개를 내밀 즈음에

박새가 블루베리를 콕콕 쪼아 먹을 즈음에

도토리가 아직 덜 익어서 초록빛일 즈음

파리 한 마리가 구석 거미줄에 걸릴 즈음에

낮이 더 짧아질 즈음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여러 곤충과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섬세하고 애정 어린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작가님이 수의사이기도 해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눈높이에 맞추어 재미있는 정보들도 많았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하루에 백 마리 이상의 진딧물을 먹는 것, 식물도 기억하고 느끼고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 것이나 지구 상의 모든 개미와 모든 인간의 무게가 같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M  편지에서 누군가 바다를 훔쳐 갔고 할아버지가 바다를 낚시해 와서 국가 영웅이 되었다고 하는데 토마스는 이를 장난 편지라 생각하고 우리 할아버지는 특별한 옷과 가면을 쓰고 날아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구출해 주었다고 응수한다. M 말했던 것은 사실 카자흐스탄이 면화를 재배하면서 세계 주요  생산 국가가 되었는데  농사를 사막 한가운데서 하면서 아랄 해의 물을 끌어다 쓰면서 그로 인해 바닷물이 말라 가는 것을 얘기한 것이었다.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 다리가 셋인 , 트레스와 가까워진 , 짧은 머리를 좋아하는 이레네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칸델라에게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 ,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토마스는 왠지  뼘쯤은 성장했을 것이다. 맞대응하고자 했던 얘기였지만 그 모든 경험 속에서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알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지구를 구하신  아닐까?



“그해 여름 나는 많은 걸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생명체이고 서로서로 도와주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이 이루는 큰 고리의 일부분이다. 딱정벌레, 산딸기, 다리 세 개를 가진 강아지, 벌, 떡갈나무, 할아버지, 할머니, 거미, 카자흐스탄에서 온 소년 그리고 나까지 모두.

내 생각에 인간은 그 고리의 일부에 들어갈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다른 생명체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도 지고 있다. 딱정벌레나 혹은 떡갈나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들과 가장 큰 차이는 우리가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자연은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아도 그냥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티스트 웨이에 나오는 것처럼 음악이나 유튜브, 강산이도 없이 혼자 모닝 산책을 했다, AM 6시 반이 낮처럼 느껴지는 여름 아침이었다. 나는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만 들고 집을 나섰다.

집 바로 앞에 모여 있는 배롱나무 일곱 그루가 눈부시게 맞아 주었다. 진분홍 색 꽃봉오리들이 모여서 여름 꽃나무답게 쨍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뒤쪽 배롱나무는 연보라색 꽃이다. 일곱 그루가 모두 동시에 핀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쪽저쪽에서 배롱나무 바라보기 놀이를 한다.

늘 걷던 산책길인데 미처 몰랐다. 매미들이 이렇게나 대규모 합주를 하고 있는 줄 말이다.

이 소리를 모두 막고 에어 팟을 끼고 음악을 듣고 유튜브를 들었다는 게 놀랍다.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가까운 나무를 올려다보면 어디든 금세 큼지막한 매미가 발견된다.


새로 생긴 샐러드 가게의 메뉴도,

딸이 얘기했던 아이스크림 가게 앞 뽑기도,

꽃집 앞 화분에 담긴 귤나무도,

천천히 들여다보면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앉아 있던 벤치 뒤, 작은 꽃나무.




자연은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곱고 참 곱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지 나뭇잎 사이 나무 둥치에 거미들이 멋진 집을 지어 사냥 중이었고 기다랗게 줄 지어 길을 가는 개미떼도 보이고, 매미의 허물도, 이름 모들 벌레들의 바쁨도 쉴 새 없이 만날 수 있다.

생각들이 오가며 천천히 주의를 기울이던 주말, 가로선의 길쭉한 구름이 고요해진 마음을 비춰주는 것 같다. 바람이 만들었을까? 자주 멈추고 그 길 위에서 종종 가로 구름 같은 여름을 보내야겠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걷기의 인문학" - 레베카 솔닛





우리 할아버지는 지구를 구했대 | 아마이아 시아 아바스칼 글 | 알레한드로 비옌 그림 | 알라딘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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