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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Jul 25. 2022

세상의 모든 색

Life is Color + Bob's Blue Period




일요일, 아이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친구들과 미니언즈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놀다가 6시까지 오겠다며 오전 11시쯤 집을 나섰다. 나는 남편과 주말 청소를 마친 후 딸이 없는 일요일 무엇을 할까 하다가 미술 전시를 가고 싶어 세종 문화 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피아 자그놀리 일러스트를 보러 갔다. 미술관을 싫어하는 딸은 내가 가자고 하면 분명히 “노”를 외쳤을 테지만 고마운 남편은 바로 함께 나서 주었다.



“Life is Color”라는 전시 제목으로 지난 10년간 엄선한 150 여점을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였는데 독특하고 자유로운 선과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다양한 작품들, 그녀의 관심사인 LGBT 혐오를 반대하거나 여성 해방 등을 표현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아이스크림 음료수의 맛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들과 여행지에서 그린 자연, 스트라이프 선을 이용한 작품, 그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도시의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감각적이며 선명한 칼라감 때문인지 작품이 상품화되어 여러 브랜드의 상품 속에 녹여져 판매되고 있었다. 명품 옷 안에도, 휴대용 티슈 포장지에도, 종이 쇼핑백이나, 책 표지, 쇄도우 케이스나 립스틱, 스킨 크림 튜브에서도 말이다. 삶은 온통 색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그런 밝고 선명한 색감들이  너무 좋으면서도 상품으로 소비를 해야 할 때에는 온통 무채색이나 스킨톤을 사게 된다. 얼마 전 식탁 위 보냉 저그를 살 때에도 그랬고 노트나 다이어리, 옷도 전부 흰색이나 블랙, 부담 없는 색으로 고르게 된다.


칼라도 어쩌면 습관 아닐까? 전시를 보고 나니 의도적으로라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좀 자극적인 색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눈에 띄면 어쩌지? 혹은 이건 너무 질릴 거야.. 하며 지레 포기했던 색들을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만으로도 내적인 만족감은 더 커질지도 모를 일이다. 사용해보니 그 색이 눈에 띄어 좋고 또 질리지 않아 가성비가 좋을지 누가 알까?





둘러보면 세상에 온통 아름다운 색이 가득하다고 얘기해주는 "내가 왜 파란색으로 그리냐고?" 그림책이 떠오른다. 원서 제목은 "Bob's Blue Period"로 한글책 뒷면지에 피카소의 청색 시대가 소개되어 있다. 피카소는 절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과 아픔을 파란색으로 표현했는데 이 시기를 청색시대(1901-1904)라고 한다.  훗날 사랑하는 여인 페르낭디 올리비에를 만나 바뀌었다고 하지만 차가운 파란색으로만 그리던 시절이라니 Blue 가 의미하는 우울함과 슬픔으로 긴 터널을 지나는 때가 아니었을까.


그림책 속의 빌리는 소중한 단짝 배트와 무엇이든 함께 한다. 게임과 운동, 춤, 티타임, 그중 가장 즐거운 것은 함께 그림을 그릴 때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배트가 잠시 떠나 있을 거라는 메모만 남기고 훌쩍 사라진다.  친구가 떠나자 빌리는 큰 상실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피카소처럼 파란색으로만 그림을 그리게 된다. 파란 바나나와 파란 오렌지, 파란 나무는 물론 멋지게 차려입고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친구들을 죄다 파랗게 칠하는 빌리.. 친구들은 그때 빌리를 위해 좋은 묘수를 떠올린다.


깊은 밤, 어두운 길을 걷고 걸어 친구들은 빌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얼마쯤 걸었을까. 언제 도착하냐는 빌리의 외침이 들리고 어느 순간 탁 트인 넓은 언덕 배기 위에 다다르자 어둡던 세상은 놀랍도록 장엄한 색으로 차오른다.



“Wow, who painted that!”

Bob 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색이 있었다는 것을! 빌리는 그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삶의 생기를 찾는다. 또한 배트가 돌아와 파티를 하며 다시 예전처럼 온갖 색이 가득한 그림을 함께 그린다.


Bob 세상에 다시 돌아온 다채로운 색들을 보며  밖을 보니 모든 자연의 채도가 한껏 높아진 한여름, 멀리 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7월의 끝자락이 손을 내민다.

전시 사진과 그림책을 뒤적이고 있는 여름날의 오후는 내 삶에서 어느 페이지쯤일까?

밋밋하고 슴슴한 일상 같지만 또 자세히 보면 아기 볼 살 같은 핑크 복숭아에서 달콤한 향기가 피어나고 쨍한 하늘색과 동글동글 흰 구름들이 사이좋게 마음속을 가득 채워준다.

내 삶의 어느 페이지에서건 그 작은 향기들과 색을 '발견'할 수 있기를, 생생한 색으로 살아가기를!



Life is Color | 올림피아 자그놀리 | 세종문화회관 전시 2022.05.27~10.01

내가 왜 파란색으로 그리냐고? | 메리언 튜카스 글, 그림 | 국민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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