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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Sep 03. 2022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도로연수 에피소드

집에 오는  안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래전 도로연수를 받으며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2012년 여름, 딱 요맘때였다. 리아는 젖을 떼고 분유를 200 미리씩 원샷 하던 시절, 9월 복귀를 앞두고 이렇게 여유 있는 시기는 없을테니 무사고 10년이 훌쩍 지나 장농면허로 전락한 운전 실력을 이 기회에 다시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매주 일요일 아침 도로 연수 신청을 했었다. 일간지 신문 사이트에 광고로 실린 학원이었는데 원하는 시간에 세시간 씩 5번 짧고 굵은 도로 연수 일정이었다. 일요일이면 남편이 리아를 맡아 줄 수 있고 남편의 차를 이용할 수도 있어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5번의 연수 날짜가 확정되었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연수 진행해 주실 분을 보기로 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나보다 한두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 젊어보이는 동안 얼굴의 남자였다. 옆 자리 보조석에서 긴급시 사용할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을 셋팅하고 매주 일요일 아침 세시간씩 이곳 저곳을 누비며 운전을 했다. 운전을 한다는 거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아이를 태우고 나갈 수도 있고 장거리 운전하다 남편이 졸려할 때 ‘내가 운전 할까?’ 이런 말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좀 신이 났었다. 유턴과 좌회전 신호 연습을 여러차례하고 신호 없이 긴 도로를 달릴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꽤 친근한 성격이고 재미있어서 나도 맘 편히 연수를 받고 있었다. 2번째 만날때 자신의 본업이 한의사라고 얘기해서 꽤 놀랐었다. 한의사로 개업해서 일하다가 작은 의료 사고가 났었고 소송이 나서 잠시 쉬고 있는거라고 했다. 사실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고 한의사에게 도로 연수를 받는구나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긴건 4번째 연수에서였다. 그날 따라 바깥 날씨는 찜통 같았는데 3시간 연수이다 보니 중간에 조금 갈증이 났다. 음료수를 사드리겠다고 말한 뒤 편의점이 보이는 조금 한적한 도로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얼른 뛰어갔다왔다. 그리고 별일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을 하고 잠자는 아기랑 뒹굴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은 혹시 어제 연수받는 동안 차를 떠나 있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사왔었고 그 때 연수해주시는 분만 혼자 차 안에 있었다고 했더니 금요일에 현금 50만원을 따로 쓸 곳이 있어서 운전석 옆에 있는 차량 중앙의 수납함에 넣어두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 분께 전화를 드렸다. 혹시 현금 봉투를 보신게 있는지 물었지만 무슨 소리냐고, 자다 깬 귀찮은 말투의 목소리를 듣는데 순간 살짝 무서워졌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갑작스레 다른 일정이 겹쳐서 남은 마지막 연수는 그냥 취소하겠다고 예의바르게 문자를 드렸다.


차량 안의 블랙 박스가 내부를 찍지 않기에 그 사람이 돈을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분 입장에서 내게 유쾌하지 않은 전화를 받았고 나로서는 그가 한의사가 아닌 좀도둑이나 사기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우리집이 어디인지 알고 소중한 내 아이가 태어나 숨쉬고 있는 곳에 그 사람이 마지막 연수를 위해 또 온다는 것에 섬찟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과 나는 잠자는 아이를 곁에 두고 치맥을 먹으며 작은 액땜이어 다행이라고.. 오백만원이 아닌 오십만원이라 다행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맥주 잔을 부딪히며 치얼스!! 세상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는데 이런 건 돌아보면 에피소드겠지 뭐...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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