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즈]
세상에는 많은 단어들이 있지만 그 단어들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순간과 감정들이 있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림책에는 각 나라에서 사용되는 감정에 대한 단어들이 정의되어 있는데 이름 없던 여러 마음들이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 같아 좋았다. 카페 이름으로, 혹은 잡지에서 많이 본 스웨덴의 피카(fica: 함께 모여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수다를 떠는 시간), 덴마크의 휘게(hygge: 일상에서 얻는 기쁨. 맛있는 아침 식사. 친구들과의 만남, 영화 관람처럼 단순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능력) 외에도 많은 새로운 단어들이 있었는데 단어와 단어의 정의를 읽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바뀌어 덜컹이던 마음 한편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함께 도착한 필사 노트에 천천히 한 마음, 한 마음 따라 쓰는 시간이 가을의 온도와 함께 흘러간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3달 남짓 이어진 아이의 주말 교리가 모두 끝나고 첫 영성체 예식을 치렀다. 예식 후 전해 줄 한아름 꽃다발을 곁에 두고 두 손 모은 딸을 바라보는데, 그림책에서 보았던 인도의 ‘나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즈]: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자부심과 자신감.
신의 사랑과 은총, 변함없이 지지받고 있음을 아는데서 나오는 자부심과 긍지, 그것만으로도 종교의 의미는 충분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귀띔으로는 첫 영을 모시는 첫 미사의 기도와 소원은 특별히 모두 다 이루어 주신다며 아이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기도 하도록 하라고 하는데 ^^ 사실이건, 아니건 정말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 ‘소원’에 대한 동화책으로 코믹한 파란 얼굴의 지니 아저씨가 나오는 이지 음 작가의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립니다”를 추천하고 싶다. 알라딘 램프를 문지르면 “주인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하고 얘기하던 커다란 몸집의 지니가 오천 살이 넘어 자유를 얻으며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소원 전문 상담사 1급 자격증을 따고 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소원을 이룰 기회를 주기 위해 앱을 개발한다.
주인공 다희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집안 상황과 좋아하는 친구 은재가 새로 이사 온 수지와 친해져 자신과 멀어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부자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부자 되는 법’을 스마트 폰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앱을 다운로드하게 된다. 화면 속의 버튼을 누르자 지니 요정을 만나게 되는데 다희의 소원을 이루도록 돕는 건지 어떤 건지 지니가 제시하는 것들에 구매를 종용하며 위트 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열한 살 다희의 시선에서 보자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공이 무엇인지, 희망과 절망,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태도 등을 생각하도록 해준다.
지니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해 긴긴 절망을 겪었고 사랑하는 순자 씨의 세 번째 소원으로 자유를 얻었다. 다음은 기록하고 싶은 동화 속 지니의 말!
절망의 끝에 사랑이 있다.
“이건 책에서 본 게 아니고 제가 절망 뒤에 절망 뒤에 절망을……. 오천팔백 년도 넘게, 그러니까… 곱하기 삼백육십오일을 하면……. 이백십일만 칠천 일도 넘게 절망 속에 산 끝에 깨달은 거예요”
몸과 정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소원은 길을 내는 것과 같다.
“내가 품은 소원이 없던 길을 만들면 다음 사람은 조금 더 소원에 쉽게 다가갈 수 있죠. 그러니까 내가 소원을 이룬다는 건 누군가가 먼저 그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이지, 온전히 내가 열심히 하고 내가 잘한 덕만은 아니에요.”
소원은 쓰고 상상해서 그리면 된다.
“정신도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고객님이 공책에 소원을 백 번 쓰고요. 소원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려야 해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
“소원을 위해 들인 모든 정성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자신의 소원이 가치 있다는 믿음, 그로 인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소원 도구들을 작동하게 하는 힘이거든요.”
“어떤 소원을 가지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이냐는 거예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운명을 넘어선 기적을 만날 수 있어요.”
소원에 대한 최고 보험은 많이 망해 보는 것!
“어릴 때 많이 망해 볼수록 더 좋죠. 최선을 다하고 쫄딱 망해도 보는 게 최고의 보험!”
발췌하다 보니 명언 제조기였던 소원 전문가, 지니! ^^
환히 뜬 달을 볼 때에도, 반짝이는 별을 볼 때에도 나는 종종 소원을 빈다. 특별한 소원이 아니어도 건강, 행복, 지구 별에 사는 사람들의 평온을 위해, 절에 가면 부처님을 보면서, 성당에 가면 제대 위를 보면서, 산에 가면 돌탑을 쌓으면서 말이다. 땅과 하늘, 우주 만물이 많은 이들의 소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바라는 것들을 다 얻지 못해도 조심스레 청하는 그 마음들이 모여 또 각자의 삶을 더 반짝이도록 해주겠지.
귀 얇은 소비자인 나는 어쩐지 지니가 제시한 부적도, 쿠키도, 소원 노트, 소라 껍데기 보험까지 다 재깍재깍 샀을 테지만 첫 영성체를 모신 딸의 첫 미사에서 소원의 효력을 떠올리면서 결국 소원을 청하는 우리 각자의 태도와 삶, 지니의 오천 년 지혜가 일러주는 소원 명언들이 모두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는 추석이다. 한 해 중 가장 큰 달을 만날 한가위, 가을 밤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지.
모두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박한 오늘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
1.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마리야 이바시키나 글, 그림 | 책 읽는 곰
2.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 이지음 글 | 국민지 그림 |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