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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Nov 07. 2022

빨간 쓰레받기의 비밀

행복한 청소부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청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분이 들고 있는 쓰레받기를 보게 되었다. 빨간 쓰레받기 옆면에 무슨 무늬가 있는 듯해서 물끄러미 보다 보니 누군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호기심에 누가 그렸는지 여쭤봤더니 아주머니께서 직접 그리셨다는 거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그림을 좋아하시냐고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조금 쑥스러워하시며 “제가 화가였어요.”라고 얘기하셨다. 우와!! 나는 아주머니 답변만 듣고 내려야 해서 “너무 멋져요!” 꾸벅 인사하고 내렸었다. 마스크를 쓰고 계시니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조용하고 소박한 느낌의 아주머니는 내가 이곳에 살면서부터 바뀌지 않고 늘 우리 동을 맡아 계단과 복도 청소를 해주신다.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는 어떤 마음일까, 고되고 힘들지 않으실까 생각되어 들고 있던 간식을 나누어 드린 적도 있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강산이와 단지 한 바퀴를 크게 돌고 우리 동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아주머니가 현관 앞쪽에 계셨다. 지난번 화가라고 알려주신 게 궁금했던 차에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서양화를 전공하셨고 주로 추상 미술을 하시고 아크릴을 써서 작업을 하셨다고 했다. 어울림누리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었는데 캐나다로 가신 후 국적이 캐나다로 되었고 지금은 한국에 돌아왔는데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청소 일이 편해서 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막상 얘기를 나누어보니 생각보다 더 따뜻한 분이셨고 어떤 그림을 그리셨는지 궁금해하자 휴게실에 포트폴리오가 한부 있는데 시간이 될 때 주시겠다고 하셨다.


“행복한 청소부” 그림책이 떠올랐다.


독일에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는 매일처럼 파란색 장화를 신고 파란색 물통과 파란색 솔, 파란색 가죽 천을 받아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다. 그곳은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였는데 아저씨가 맡은 글루크 거리는 새것처럼 보일만큼 깨끗했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을 위해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을 보고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위해 산 레코드 플레이어로 밤새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자 차츰차츰, 오래전에 죽은 음악가들이 다시 살아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속으로 묻고 대답하고, 마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어.”


뒤늦게 도서관에서 책에 빠진 아저씨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라고,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좀 더 일찍 책을 읽을 걸 그랬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놓친 것은 아니야.”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는 행복한 청소부, 어느새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를 올려다보게 된다. 사다리 위에서 아저씨는 어떤 행복을 느꼈을까. 몸을 쓰는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도 뻗어나간 그의 음악, 예술에 대한 열망과 진심!  시간이 흘러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느끼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표지판을 닦는다. 대학에서의 강연을 거절한 것은 그 어떤 이유보다 그가 거리 위의 자기 일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일이 음악에 대한 강연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균형 맞춤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 •


오후에 아주머니가 우리 집 앞에 포트폴리오를 두고 가셨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 장 한 장 포트폴리오를 넘겼다.

To be continued.



행복한 청소부 | 모니카 페트 글 |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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