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love? It is relationship!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뭇 진지한 질문에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사랑이 과연 무엇일까? 조금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은 철학적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답을 먼저 하건대, 될 수 없다. 어떤 대상 혹은 사태가 하나의 철학(혹은 학學)으로서 설명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최소 하나 조건 이상을 성립하고 있어야 한다. 우선, 지칭과 개념이 대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시되는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발생론적 논리가 존재해야 한다. 즉, 이 대상 혹은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이 두 조건 중 그 어느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단적으로 말해,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사랑의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데 이것이 단적으로 사랑이란 말인가. 애초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어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그 개념이 소실된 기괴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발생론적 논리가 존재하는가? 사랑이 현실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다(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들, “그 사람(혹은 그것)이라서.”라는 공허한 순환 논변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위의 논의를 다르게 얘기하자면, 사랑에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적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에 어떻게 윤리를 물을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우리가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물을 수 없다. 우리가 윤리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부속물뿐이다. 그 부속물은 단언컨대 사랑 맺음(혹은 사랑함)에서 오는 관계다. 우리는 오로지 그 관계에 대해서만 윤리를 물을 수 있다.
<하트>는 이 논의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가영은 자신과 사랑을 나눈 유부남 성범을 육 개월 만에 찾아가 자신이 또 다른 유부남 용훈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미 비윤리적인 관계를 맺었던 상대에게 찾아가 자신의 또 다른 비윤리적 관계를 상담받는 과정에서, <하트>는 진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가영 감독 특유의 구어체보다 더 구어체스러운 대사를 통해 사랑이 아닌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가영이 성범에게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이 위태로운 관계를 다시금 이어간다. 재밌는 점은, 관계가 다시금 이어졌을 때, 즉 그들이 사랑을 다시 나눴을 때, 등장하는 그들의 윤리적 영혼(?)이다. 각각의 영혼은 상대방에게 등장하여 윤리적 질타와 조롱을 한껏 실어 상대방을 책망하는데,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이 지점을 <하트>는 영화적 상상을 통해 구현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에게 무게감을 실어주기보단 가벼운 유머로서 다가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홍상수식 예술 영화가 시네필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등장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많은 독립 혹은 저예산 영화가 이를 표방했다. 이 영화들의 가장 큰 특징은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이 고민에 천착하여 이를 영화적 기법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하트>는 이런 조류를 계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로맨스 코미디나 낭만적 연애 장르에 젖어있지도 않는다. 즉, 사람이 만나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른바 정가영식 ‘사랑의 부속물로서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지 얘기한다. 그렇기에 <하트>가 던지는 이 윤리적 물음은 정당화 될 수밖에 없다.
정가영 감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영화를 아예 1부와 2부로 나눠버린 것이다. 가영이 겪었던 모든 일들(혹은 일부의 일들)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또 다른 가영이(이후에 감독 가영으로 칭함), 이 영화에 캐스팅하고자 하는 배우와 미팅을 한다. 여기서 또 한 번 재밌는 시퀀스가 등장하는데, 바로 배우와 나누는 대화 시퀀스다. 마치 윤리적 상식을 반영한 듯, 이 배우는 감독 가영을 힐난한다. 1부에서 관계망 안에 속한 사람들의 비판에서 머물렀다면, 2부에서는 이 배우의 입을 통해 제삼자 적 입장에서 이 관계를 조망한다. 다시 말해, 1부에서 단순한 서로의 자위나 자조에 머물렀던 한계를 2부를 등장시킴으로써 다시금 이 관계의 윤리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배우의 입에서 일방적인 힐난이 나왔다면, 이것은 고리타분한 도덕 교과서가 됐을 테다. 하지만 <하트>는 제삼자 적 객관성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이 배우의 입에서 쏘아대는 대부분의 말은, 간접적이고 은밀하며 은유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라든지, “만들면 또 만들고 또 만들어서 … 결국 중독되겠죠.” 같은 대사를 통해 감독이 지향하는 본의를 우회한다. 이를 통해 판단은 관객의 몫이 되고, 관객은 애초에 <하트>가 지적하던 사랑이 아닌 관계에 물음을 던지게 된다.
유쾌함으로 포장된 본의, 가벼움으로 둘러싸인 사유. 정가영 감독의 영화적 어투를 계속해서 듣고 싶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