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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Dec 13. 2019

<나이브스 아웃> 리뷰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

단언컨대, 이것은 명백한 정치드라마다. 하지만 확실한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는데, 바로 추리 장르이다. 이것은  오롯이 장르성을 유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장르성에 기대어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석할  있다. 보통의 경우,  가지 정도의 이유로 장르성의 가면을 빌리는데, 하나는 본의를 관객들에게 은밀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나 아니면 장르적 서사를 무기로 극적 내러티브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본의를 너무도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고, 극적 내러티브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장르라 하기에는 순진한 구석이 있다.  순진한 구석이란, 정통 추리 서사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 소위 ‘추리 덕후’에게는 세련되지 못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 감독은 정치드라마에 추리라는 장르의 외피를 덮어 씌운 것일까.


일단 영화로 들어 가보자. 하나의 사건,  핼런의 죽음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여기서 사설탐정 블랑이 사건에 개입해 가족사를 들쑤시고, 핼런의 간병인 마르타를 ‘왓슨이라 칭하며 수사에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는데, 현대를 배경으로 함에도 경찰이 사설탐정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그렇고 핼런의 집을 중심으로 묘한 중세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그렇다. 어딘가 시대상과 아주 약간의 간극을 벌려놓은  관객들을 『나이브스 아웃』의 세계로 초대하는 . 그럼에도  영화가 지적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대단히 현대적이며 실제적이다. 예컨대, 페미니스트 담론을 언급하는 것도, 난민 문제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것도, 나치를 표방한 어린 백인 레이시스트를 등장시키는 것도 말이다.


그럼  지점에서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방법은 동전을 뒤집어서 보는 것과 같다. , 뒤집어서 보는 것이다. 정치적 담론을 후경을 놓고 추리적 장르성을 전경으로 놓는 일을 거꾸로 보자는 것이다. 추리적 장르성을 후경에 놓고 정치적 담론을 전경에 배치하여 영화를 바라보면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추리적 장르성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감독(혹은 작가)이 의도한 진실에 관람객(혹은 독자)이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얘기하자면  안에서의 진리는 현현하며 생생하다. 진실이  진리고, 진리가  진실인  명제를 정치적 담론이 전경으로서 투영된다면, 그것은 감독이 바라보는 정치적 담론에 어떠한 진리성 여부를 따져보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진리성은 감독의 의도한 바대로 살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독해해내는 것에 그친다. 다시 말해, 감독이 바라보는 정치적 시선, 예컨대, 마지막 쇼트에서 마르타를 발코니에 위치시키고 핼런의 가족들을 밑에 배치시켜 수직적 미장센을 잡아낸 .   번도 진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선善한 행동만을 관철하는 언더도그마적 주인공. 이것이 감독이 바라보는 정치적 담론의 진실성이며, 우리는 이것을 추리적 장르성이라는 후경에 투영시켜 그것이  진리라고 독해해내야 한다.



그렇기에  영화가 조금 아쉬운 것이다. 추리성의 외피를 빌려서 그것을 거꾸로 입도록 요청하였으면, 오히려  담론을 더욱 철저히 혹은  세밀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서사적 봉합성이라든지, 아니면 감독의 의도인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지금 감독이 얘기하는  담론은 상당히 나이브하며 그다지 사유를 촉발시키지도 않는다(더군다나  소수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소수자를 한정시킨 , 이것 역시도 이에 한몫을 거든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블랙 코미디나 배우진의 화려한 입담(혹은 연기)은 감관을 자극하는  충분하지만 지성을 자극하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영화다.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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