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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Apr 02. 2022

우리를 잃지 않기로 해요

배우를 꿈꾸는 우리

안녕하세요. 편지 첫 말머리에 형식적인 인사 건네는 걸 싫어하는데 이 편지를 쓰면서 가장 먼저 ‘안녕하세요’라는 재미없는 말이 나와버렸네요.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 없는 C님께 그래도 인사를 먼저 건네야 할 것 같았나 봐요. C님이 편지 프로젝트에 신청을 주셨을 때 참 반가웠어요. 언젠가 긴 긴 응원의 말을 드리고 싶었는데 혹시 제 주책에 부담스러우실까 걱정했거든요. 편지를 시작했으니 오늘은 C님께 마음껏 말을 건네도 되겠지요?


오늘은 날이 참 좋았어요. 며칠 전까지 봄이 오긴 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쌀쌀했는데 이젠 외투가 제법 무겁고 덥게 느껴지더라고요. 앞만 보고 다니느라 몰랐는데 곳곳에 봄꽃도 꽤 폈다는 걸 오늘에서야 느꼈어요. 배우를 꿈꾼다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무감할 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 근처 카페에 들어왔답니다. 점점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는데 제게 올 겨울은 유독 짧았던 것 같아요. 분명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을 텐데 제게는 점점 시간이 빨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안정감을 찾고 여유로워진다는데 어째 저는 나이가 들수록 조급하고 불안한 사람이 되는 것 같네요.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스스로가 되길 바라며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요즘이랍니다.


C님이 먼저 제 SNS 계정을 팔로우해주셨을 때 왠지 모를 반가움이 들었답니다. 같은 꿈을 향해 달리는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다는 점도 좋았지만 C님이 가진 활기차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저까지 기분 좋게 하더라고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런 매력을 지닌 C님이 부럽기도 했어요. 배우란 C님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때로는 C님의 SNS 계정에 올라오는 연습 영상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언젠가 C님과 좋은 현장에서 꼭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C님도 배우로서 고민이 있으시겠죠? 저는 요즘 특히 고민이 많아요. 요 근래 번번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있거든요. 연기 영상이 별로인가, 이미지에 문제가 있나, 옷 스타일에 너무 신경을 안 쓰나……. 별의별 생각이 스쳐요. 배우란 직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자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게 사실이에요.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한 탓도 있지만 작품이나 캐릭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겨서요. 스스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저 자신을 미워한 나날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나는 왜 남들처럼 빛나지 않고 평범할까. 왜 이렇다 할 특기가 없을까. 어쩌다 배우란 꿈을 가지게 된 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 순간 배우라는 제 꿈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배우를 꿈꾼다는 걸 남들이 알면 비웃을까 봐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해본 적도 있어요. 언론사 인턴을 하기도 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특강을 하는 강연자가 되어보기도 했죠. 배우라는 직업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적성에 아주 안 맞지도 않았고요.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일상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다른 일을 하면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꿈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거 있죠? 꿈이란 게 참 신기하죠. 결국 저는 하고 싶은 일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제가 해본 일 중 가장 불안정한 직업을 택한 거였어요. 주변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제게는 큰 선택이었죠.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언론영상학을 전공한 제가 배우를 하겠다고 선언한 건 주변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주위에선 제가 방송국 PD나 기자를 꿈꾸는 줄 알았지, 배우라는 직업을 염두하고 있을 줄은 몰랐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안정적인 일을 시작하는 건 어떠냐는 설득과 걱정도 이어졌죠. 그런데 도무지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일로 연기를 할 때만큼 달콤한 순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버티기로 했어요. 저는 연기로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대신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죠. 돈이 없어 굶주리는 일도, 선택받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도 배우라는 직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버티다 보면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끌고 있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도 신경 쓰고 있어요. 물론 쉽진 않지만요.


주위에선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사람들의 소식도 많이 들려요. 그들의 탓이라기엔 세상이 너무 각박해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선택이죠.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제가 철없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계속 철없이 살고 싶어요. 꼭 꿈을 이뤄서 저처럼 간절했던 누군가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도 한답니다. C님과도 오래 서로를 응원하며 서로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우리가 꿈꾸는 현장에서 소중한 대사를 내뱉을 그날을 그려봅니다. 우리 끝까지 버텨봐요. 그리고 절대 우리를 잃지 않기로 해요.


긴 긴 겨울이 끝나고 돌아온 봄처럼 우리에게도 봄이 오겠죠? 어쩌면 이미 온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파란 하늘과 만개한 꽃들을 만끽하는 하루하루를 살자고 다짐하며 편지를 마쳐봅니다. 좋은 봄 보내요!


당신의 동료 윤로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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