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길 Jun 20. 2022

당사자성

열매 사용 설명서

열매가 있었다. 너는 그것을 빨간 열매라 했다.

나는 그것을 파란 열매라고 하고싶었지만 너를 사랑했기에 그것을 열심히 빨간 열매라고 불렀다.

열매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는 너에게 그것을 미운 열매라고 부르자 했지만 너는 나를 비난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너의 주관일 뿐이야."

지나가던 사람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며 씩 웃었는데

아연해진 나는 그냥 모두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미운 열매라 부르자, 너는 나에게 징징댄다고 했다.

징징댄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무식하게 굴지 말라며 다시 그것을 빨간 열매라고 부르길 권했다.

나는 열매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열매 사용 설명서>

권장같은 강요를 하지 마시오.

강요같은 권장을 하지 마시오.

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입을 다무시오.


설명서를 쓰고 나니 나도 너가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더러웠다. 

설명서를 구겨버렸다.

대신 그것을 파란 열매라 부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뜻한 글을 쓰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