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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Jun 20. 2022

당사자성

열매 사용 설명서

열매가 있었다. 너는 그것을 빨간 열매라 했다.

나는 그것을 파란 열매라고 하고싶었지만 너를 사랑했기에 그것을 열심히 빨간 열매라고 불렀다.

열매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는 너에게 그것을 미운 열매라고 부르자 했지만 너는 나를 비난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너의 주관일 뿐이야."

지나가던 사람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며 씩 웃었는데

아연해진 나는 그냥 모두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미운 열매라 부르자, 너는 나에게 징징댄다고 했다.

징징댄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무식하게 굴지 말라며 다시 그것을 빨간 열매라고 부르길 권했다.

나는 열매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열매 사용 설명서>

권장같은 강요를 하지 마시오.

강요같은 권장을 하지 마시오.

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입을 다무시오.


설명서를 쓰고 나니 나도 너가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더러웠다. 

설명서를 구겨버렸다.

대신 그것을 파란 열매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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