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사용 설명서
열매가 있었다. 너는 그것을 빨간 열매라 했다.
나는 그것을 파란 열매라고 하고싶었지만 너를 사랑했기에 그것을 열심히 빨간 열매라고 불렀다.
열매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는 너에게 그것을 미운 열매라고 부르자 했지만 너는 나를 비난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너의 주관일 뿐이야."
지나가던 사람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며 씩 웃었는데
아연해진 나는 그냥 모두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미운 열매라 부르자, 너는 나에게 징징댄다고 했다.
징징댄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무식하게 굴지 말라며 다시 그것을 빨간 열매라고 부르길 권했다.
나는 열매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열매 사용 설명서>
권장같은 강요를 하지 마시오.
강요같은 권장을 하지 마시오.
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입을 다무시오.
설명서를 쓰고 나니 나도 너가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더러웠다.
설명서를 구겨버렸다.
대신 그것을 파란 열매라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