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삼삼한 내게 만들어준 토마토 미소 파스타
살아내는 일이 쉬운 적이 없었던,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던 유년시절에도 새로운 지식에 대한 즐거움과 매일 다른 모양으로 시시낙낙거리며 친구들과 누렸던 행복, 무수한 가능성으로 빽빽해서 조금도 엿볼 수 없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버텨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린시절의 내가 울면서 쫓아와 내 뺨따구니를 한대 갈기고 씩씩거리겠지만 지금와서 보면 그때는 살아내는 맛이란 것이 분명 존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그 떨림이 아직도 이 가슴 아래로 느껴진다. 처음 접한 시구와 처음 배우는 연산식, 낡은 선생님의 입에서는 매번 새로운 것들이 흘러나와 어제는 오늘과 같지 않고 오늘도 내일과 같지 않았다. 친구들은 여러의미로 변화무쌍 했고 그들과 나 사이에도 새로운 다이나믹이 있었다. 오늘은 아무개가 아무개를 좋아한다는 일이 화두가 되고, 다음 날은 한문선생님에 대한 친구의 날선 말대꾸가 화두가 되고, 방과후 노래방에 가는 일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일이, 이성친구들과 같이 모여 노는 일이, 쉬는 시간에 몰래 매점을 간다거나 약간의 비행을 함께하고 낄낄거린거나 하는 일들이 그 에피소드 자체로서 모두 싱싱하고 선명했다. 별볼일 없는 일은 없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중압감은 사실 공포에 가까웠지만 그 어둠 너머에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밝고 대단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 가능성 하나만 손에 꼭 쥐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갈 배짱이 있었다.
잠에서 깨 문득 살아내는 맛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짓눌려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부질없이 사라진 과거를 더듬던 이 새벽에, 그 때 꼭 쥐었던 손을 펴보니 아무것도 쥐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런 기대도 없는 탓에 촘촘했던 삶은 어느덧 느슨해져, 그 성긴 틈 안으로 아무리 혓바닥을 밀어넣은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미각을 곤두세운들 쥐고 핥을 기대가, 소망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무언가를 붙들어야겠다고, 간절한 소망 하나는 움켜쥐고 있어야겠다고 문득 다짐하며 다시 한번 오래도록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가능성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손이 유달리 평안해보였다. 그러고보면 나는 별달리 마음 괴로울 데가 없었다. 일상은 별 의미없는 짜증과 분노를 제외하면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마음에 평화가 깃들어 불안없이 사는 것은 유년시절 내 소원이었다.
나는 입만 쩝쩝거리며 건너편에 짜게 울고 있는 나를 바라 보았다.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미세한 안도의 맛이 났다.
큔에서 구입한 카리테 미소에게 드디어 쓰임이 생겼다. 파슬리까지 듬뿍 올려 먹으니… ‘맛’이 났다.삶이 삼삼한 내게 만들어준 토마토 미소 파스타.
뱃속 한켠에서 여전히 짜게 울고있는 내 녀석에게도 위안이 됐길.
- 202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