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
나는 걸음보다 말을 먼저 뗀 아이였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로 동네 사람들에게 천진난만하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나로서는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시절의 일들을 종종 들려주셨다. 그저 걸음을 늦게 뗀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언어적 재능'을 타고난 것이라 굳게 믿으셨다. 지금까지도 내가 언어를 다루는 일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건 어머니의 그런 믿음 덕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실로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기도, 단절시키기도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해내거나, 없애버리기도 한다. 인간을 더없이 아름답고 이성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지만, 어리석고 독단적인 존재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 무서운 사실은 '생각'은 결코 우리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몸소 느낀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심리학 강연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강연자는 청중들에게 '북극곰을 떠올리지 마라'고 말한다.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를 포함한 그 강연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이 '북극곰'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북극곰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북극곰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인가,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인가.
"이곳에 북극곰을 데려온 것은 누구인가?"
이미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북극곰 이야기'(흰곰 효과)는 1987년 하버드 대학에서 다니엘 웨그너에 의해 행해진 실험을 통해 밝혀진 현상이다. 실험의 내용은 간단하다. 웨그너는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게는 특정 대상(흰 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을, 다른 그룹에게는 그 대상을 생각할 것을 요구했다. 두 그룹은 대상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을 울렸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생각하지 않을 것'을 요구받은 그룹이 더 자주 대상을 떠올린 것이다.
이렇듯 특정 생각이나 욕망에 대한 억제가 반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을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Ironic process theory), 혹은 '역설적 통제 이론'(Ironic control theory)이라고 한다.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사고에 대해 완전한 지배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을 통제한다고 여긴다. 손을 뻗어 물건을 집거나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처럼, 생각 또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와 실험 결과들이 우리가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인가? 인류의 지성, 혹은 두뇌가 덜 진화되었기 때문일까. 반대로 인류의 지적 능력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지닌 인지 능력의 생성, 발달 과정에 대한 접근 말이다.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1896~1980)의 연구가 좋은 단서가 되어줄 것 같다. 피아제의 '발생학적 인식론'은 인간의 지적 능력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는 모든 생물이 지닌 '항상성' 즉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인간의 인지적 발달 과정에도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생물이 지키려는 일정한 상태, 그것은 이른바 '평형 상태'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은 평형 상태를 깨는 요소들이다. 피아제는 정보들로 인해 깨져버린 평형 상태를 다시 회복하려는 경향성을 '지적 호기심'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닌, 무수한 정보들 속에서 평형 상태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발생학적 능력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발달 과정의 단계에 대해서도 정의했다.
피아제가 제시한 인지 발달 과정에서 개인은 특정하고 분명하게 나타나는 '인식의 공통적인 패턴'을 보인다. 가령, 특정 시기의 어린이들이 특정 질문에 대해 공통된 오답을 낸다는 통계를 예로 들 수 있겠다(어린이들은 '틀린' 답이 아니라 '다른' 답을 내놓은 것이다). 즉, 인식의 발달에는 아이가 걸음을 떼고 언어를 습득하듯 일반적인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성장해나가듯 정신(인식) 또한 점차 발달해나간다는 것이 발생학적 인식론의 요지이다. 지적 능력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성장해나간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그러한 과정이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통념적으로 '이성'은 '본능'과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이성'의 형성과 발달은 '본능'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만일 지적 능력이 그런 방식(우리 의지와 무관한 유기체적 성장)으로 형성되었다면, 우리가 그 능력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지니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피아제의 관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성장해나감을 확인했다. 또한 그렇게 습득된 인지 능력에는 주목할만한 보편적 특성들이 존재했다. '흰 곰 효과' 역시 인간의 인지 능력이 지닌 보편적 특성일 것이다. 바로 인간의 정신이 억제에 대한 반작용을 보인다는 특성.(어쩌면 이러한 경향을 피아제가 주장한 평형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보다 근본적인 특성이다. 그것은 '인식'이 우리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식의 과정은 자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인식 과정은 우리 정신에 잠재된 일종의 '시스템'에 의해 이뤄진다. 그 시스템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은, 우리의 인지 능력이다. 우리는 그 능력과 '함께' 세상을 인식하고 사유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북극곰을 데려온 것은 누구인가? '북극곰을 떠올리지 마라'고 요구한 강연자인가? '북극곰'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한 우리의 이성인가? 그게 아니라면 '북극곰'이라는 단어 자체인가? 정답은 알 수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북극곰이 우리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것뿐이다. 인지 능력의 발달 과정이 그러하듯, 인식의 과정 역시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지식들, 수많은 사고를 통해서 습득된 논리 능력들, 그리고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들이 한데 뒤섞여 인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식은 복합적이고 상대적이며 불완전한 과정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정보들을 저장하고, 현재의 정보들을 받아들이며 미래에 대해 추론하며 의식을 통해 그 정보들을 종합하고 규정한다. 현실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추상적 대상이나 자기 자신(자아)에 대해서도 인식한다. 그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북극곰'을 쫓아내려고 애를 쓰며 인식의 역설적 작용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도 한다.
인간 정신에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현상들은 우리 정신의 한계나 오류가 아닌, 경이로움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한 인식을 바탕으로 끝없이 진리를 탐구해나가는 존재이다.
지금까지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는 모순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인지 능력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우선 우리는 장 피아제의 발생학적 인식론을 단서로 삼아 인간의 지적 능력이 유기체적으로, 스스로 발달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인지 능력이 그러한 방식으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하는 원인으로 파악했다.(발달 과정조차 완전히 통제하거나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이러한 추론 과정에는 단서로 삼은 피아제의 이론에 대한, 또는 과정 자체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인식의 과정이 매우 복합적이며 완전한 통제가 불가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한 요소들은 인식의 한계점인 동시에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인식의 불완전함과 불가해성은 인간의 정신에 더욱 폭넓고 다양한 층위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fin-
참고 문헌
<현대교육심리학> 정원식 외(1987)
<피아제의 발생학적 인식론의 방법론에 대한 주요 비판들과 그 문제> 은은숙(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