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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May 09. 2024

질식



욕실 배수구가 막혔네요

일주일 전에는 거실 전구가 나갔는데

그럴 만도 하죠,

청소를 꽤 오랫동안 미루고 있었거든요


장갑을 낀 손이 어둡고 습한 구멍 속으로 들어가요

잡히는 대로 꺼내봅니다

온갖 잡동사니들과 함께 새까만 머리카락들이

뒤엉켜 있더라고요

진즉에 왜 몰랐을까요?



온갖 오물을 뒤집어쓴 머리카락들이 가여워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겨준 뒤에

드라이기로 말려줬어요 그동안 많이 답답했지?

K의 것도 있네요 긴 생머리

그 구멍 속에 적어도 두 달은 있었다는 거니,

지금까지 다 봤겠구나 너도

잘 모아서 변기통에 흘려보내줬어요



식탁 위 어젯밤 삶아둔 달걀을

하나 집어 싱크대로 가요

뽀작뽀작, 껍질이 쉽게 떼어지지 않네요

K는 잘만 하던데,

흉이 져서 못난 달걀을

한입에 넣고 꼭꼭 씹어요 꾸역꾸역

수도꼭지를 열고 눈을 감아요

목이 막혔으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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