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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Jul 31. 2020

'나'와 '우리'를 위한 '당신이 옳다'

내가 그렇듯, 당신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겠지요

당신이 옳다.

내 휴대폰 바탕 사진에 적혀 있는 문구다. 내가 시작했던 이혼 소송을 취하하며 그때부터 2년 동안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 당신이 옳아. 그래, 그랬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당신이 옳지. 당신이 옳아."


부부상담 12회기를 진행하는 동안 연세가 지긋하신 상담사께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다. 그중 한 권이 당시 신간이었던 <당신이 옳다>였다.


책 제목만 고 처음엔 '관계에 있어 무조건 긍정하라는 뜻인가? 긍정은 좋은 거니까?' 싶어 읽기도 전에 거부감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사와 신뢰관계가 생겼던 터라 추천해주신 분을 믿고 정독했다.


이혼 소송 중 나는 '시' 분량 정도 이상의 활자가 있는 글에 제대로 집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과도 거의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있었고 책에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서점에 갔고, 다 읽지 못할 양의 책들을 짊어지고 낑낑대며 집으로 와 뻗어 버리곤 했다.


집중이 잘 안되어 소리 내어 읽고 또 읽고

(난 중저음의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

밑줄을 치고, 필사를 하고

( 빽빽하게 적힌 내 손글씨를 정말 좋아한다),

그러다가 널브러져 울기도 하고

(냉혈인간 소리를 듣던, 울지 않던 사람인데. 한번 울기 시작하더니 슬퍼서 울고, 좋아서 울고, 고마워서 울고. 그렇게 잘 우는데 왜 안 울고 살았나 싶다).


<당신이 옳다>는 '정혜신'이라는 심리치유자(정신과 전문의 자격이 있지만 스스로 이렇게 정의한다)가 세월호 참사 관련 치유 현장 등에서 온몸으로 체험하고 터득한 심리치유에 관한 이론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의 고통으로 힘든 누구나가 실생활에서 언제든 펼쳐보고 '도움이 되는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공감' 행동 지침서를 표방하며, '공감'에 대한 적절한 사례들과 함께 이해하기 쉽도록 적혀 있다.


당시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졌던 나에게도 잘 읽혔다. 책을 읽어내는 것이 어렵진 않았지만 소리 내어 읽은 부분이 많았다. 새겨두고 나에게 적용하고 싶고, 내 삶이 되었으면 하는 내용들이 많아 체화(體化)하고 싶었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해냄, 2018

이 책을 권한 상담사는 우리 부부가 오랜 주말부부생활, 성격차이 등으로 친밀감도 없고 서로를 벽으로 여기며 소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부부가 서로에 대해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한번 해보길 바랬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연배인 그녀는 우리 부부의 이혼소송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남편과 나, 아이가 앞으로는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숨기지 않았다. 울보가 된 내 눈도 붉어졌다.


'공감=당신이 옳다'의 뜻은
상대방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칭찬 대잔치를 하거나, 다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외형적인 것(지식, 경제력, 외모 등)이 아닌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대해 주목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은 갓 지은 밥과 같은 것이다. 잘 지은 밥이 있으면 간장 하나만 가지고도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밥이 기본이라 서다. (중략)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감의 힘은 그렇게 입체적이다. - p.142

또한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이며, '너이기 때문에'라는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 확실한 내편 인증이다.

너는 항상 옳다
=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이 쉽지. 확실한 내편 인증? 무조건인 믿음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관계?


'나에게 당신은 당신 존재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나는 무조건, 언제나, 언제까지나 당신을 믿고 지지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친정어머니, 자식, 동생 정도인 것 같다. 이렇게 피로 맺어진 사이 말고도, 배우자 혹은 가까운 지인 몇몇과는 그런 사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상처가 공감받고 치유받은 것은....(중략) 나의 스승이자 연인, 도반이고 반려인 남편에게 남김없이 공감받은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천천히, 끝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 나를 더 충분하게 드러내고 깊이 공감받고 이해받았던 시간, 그리고 깊이 사랑받았던 시간을 거치며...(중략) - p.186

본문에서 저자가 남편의 공감을 통한 치유 경험을 기록한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 눈물이 난다. 정말 너무나 부러워서-ㅜ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일상으로 복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남편의 외형적인 것(경제력, 외모, 지식 등)과 관계없이 '남편 존재 자체에 대해 주목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정말 많이 힘을 내야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노력임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남편에 대해 공감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소멸'시키지 않아야 한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곧 잘 하며 기운을 뺀다. 그러고는 '남편'에 대한 헛된 기대와 실망을 한다. 이건 '나'스스로 '나를 소멸'시키는 일이다.


'나'와 '남편'의 '경계' 또한 인식해야 한다. 무조건 '남편'에 대한 공감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 하는 순간인지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나'와 '남편'이 각자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 자체로서 공감을 주고받는 것이고, 비로소 건강한 '나와 너의 관계, 나와 너를 동시에 보호하는 공감'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공감'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능력이다. '원래 타고나길 공감을 잘하는/못하는 사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가장 어려운 인생 숙제, 사랑과 공감의 관계 맺기'

사랑 욕구를 일생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려면 고도의 인간관계 능력이 필요하다. 연인이나 배우자, 자식들에게 한 존재로서 온전히 사랑받는 일은 재력이나 권력과는 별개의 중요한 능력이다. 나와 또 다른 존재 간에 공감적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삶의 동력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일생을 살아갈 안정적인 동력원인 사랑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가장 단순한 이 일이 참 어렵다. 삶의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전문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 P.223~224


니나씨, 언제나 니나씨 인생의 우선순위는
 니나씨라는거 잊지 마세요


부부상담과 별개로 개인상담을 받고 있던 나.

이혼소송 취하 후 상담사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소송 전에는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면 마음속으로 항상 짐을 쌌다.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귀를 닫고 마음도 닫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계속 짐만 쌌다. 결국 마음속으로 쌀만큼 싼 짐을 더 쌀 수 없어서, 진짜 짐을 싸서 집을 나왔었다.


하지만 소 취하를 결정하고 다시 함께 살기로 했다. 함께 하기로 했지만 갈등이 없을 수도 없고, 이해해야 할 부분은 더 많아졌다. 보듬어야 하는 상처(이혼소송을 했다는 사실, 별거)도 더 생긴 셈이다. 이제부터는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 마음속으로 짐을 싸기도 힘들다. 이미 짐을 싸서 나와봤고, 그 방법은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너무 피곤해서 다시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언제든 남편과의 갈등은 생길 수 있고(어쩌면 매일 그렇게 살고 있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엄살을 부리며 또다시 귀를 막고 마음의 문도 닫고 그 문안에 나를 가둘 것만 같기도 하다. 상담사도 그 지점에 대해 우려를 한 것이다. 어쩌면 이혼소송 전 보다 더 마음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항상 자신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을 포기하거나 놓지 말라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자신의 엄마 이야기도 꺼내시며 나에게 그 말을 하던 상담사도 붉어지는 눈시울을 숨기지 않았다. 여전히 울보인 내 눈도 같이 붉어졌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존재 자체에 주목하기 위한 질문을 하자.
"요즘 마음이 어때요?"


온 체중을 실어 진심을 다해 묻자. 대답은 충분히 기다리고, 어떤 말이든, 어떤 결론이든 상관없이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자.


나 자신을 스스로 돕기 위해 묻자. '너 계속 그렇게 살거니?' '그렇게 계속 살고 싶은 거 맞니? 진짜니?'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개의치 말고 진심으로 물어보고, 내 존재에 내가 집중하며 살자.

'내'가 있어야 나의 타자인 '당신'이 있겠지.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 p.310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 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 -p.311


언제나처럼 오늘도 당신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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