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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Aug 12. 2020

배우자(연인)의 첫인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부부감정치유>  - '우리의 이야기 스위치'

지금 배우자(연인)의 첫인상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 1988> 만원버스에 탄 정팔이가 덕선이를 보호해주고자 티안나게(?) 팔에 힘을 주고 서있다.
함께 한 과거에 대한 부부들의 이야기에
회색지대는 없다
즐거운 추억 아니면 쓰라린 추억으로만 기억할 뿐


<가트맨 부부 감정치유>의 한 챕터 '헤어져야 할 때인지 아는 방법'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부부들이 함께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결혼 생활을 이어 갈 사람들과 헤어질 사람들 간의 대조가 분명하다고 니다. 


이에 대해 실제 부부들을 대상으로 연구하였고, '우리의 이야기 스위치'라는 측정기로 식별할 수 있다고 해요.

배우자와 어떻게 만났나요?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특별히 배우자가 눈에 띈 이유가 있었나요?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를 알고 있나요?
상대의 성격에 맞춰 주기 위해 조정해야 했던 점이 있나요?
어떻게 상대방이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결정을 내렸나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부부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를 통해 서로의 관계에 얼마나 신뢰 또는 불신이 쌓였는지와 배반지수를 감지하여 부부관계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는지 식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이야기의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고 해요.

1. 지난 과거에 대해 좋았던 시간을 강조하며   
   힘든 시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
2. 성공이 아닌 실패의 기억을 도드라지게 말하는 경우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2가지로 나뉜다고 하고요.

1. 배우자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거슬리는 점은 감싸 주는 유형(소중히 여김)
2. 그 반대 유형(경시함)


저자는 부부들이 함께한 삶에 대하여, 배우자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비교해 보면 결혼생활 유지헤어짐이 분명히 대조된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과거를 완전히 상실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던 부부라도 관계 회복의 기회는 남아 있다고 해요.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부정적 이야기의 스위치가 켜진 경우라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미래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접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 장을 마무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을 유지할 것인지 이혼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나는 상대방이 이혼을 원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부부를 많이 상담해 왔다. 종종 대화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흐른다.

아내 : 이혼하고 싶어.
남편 : 그 정도로 힘든 줄은 몰랐어. 말하지 그랬어.
아내 : 당신에게 지난 9년간 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또는

남편 : 속이 상했는데 왜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더 일찍 상담을 받을 수도 있었잖아.
아내 :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지? 말싸움만 많아지고, 늘 그렇듯이 다 내 잘못으로 돌릴 거면서.

- p.293


이와 똑 닮은 대화를, 저희 부부도 생전 처음 방문한 법원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나누었습니다. 그날 처음 보는 가사조사관 앞에 나란히 앉아서, 온기라곤 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이 아닌 정면에 앉은 조사관만 바라보면서요.

(이혼을 이야기하는 부부 대부분이 경험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몇 회 남지 않은 부부상담을 했던 어느 날이었어요. 상담이 끝난 후 상담사는 저와 남편에게 둘이 같이 서점이라도 들렀다가면 어떻겠냐고 권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못 이기는 척하며 부모교육과 부부상담 중 추천받은 책을 둘러보러 인근 서점으로 향했어요.


상담센터가 위치한 곳은 저나 남편이 대학생활을 했던 곳 인근이라 익숙했습니다. 차도 주차해놓고 2km 정도의 거리를 걸었어요. 무뚝뚝하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저와 남편.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그럴 거면 뭐하러 주차하고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


목적지도착해 메모해둔 책 목록을 보며 있는대로  찾아내어 구매했습니다. 서점 근처 카페에 들렀고 욕심내서 많이 산 책들을 펼쳐보며 어색한 공기를 채울 거리를 뒤적거렸어요.

 

어쩐 일인지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난 네가, 나 싫다고 이혼하자고 하면

 '그래 OK, 얼마든지, 그러자'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네가 정말 그러자니까... 알겠다는 말이 안 나오네.

 진짜 미안한데. 네가 하자는 대로 못하겠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너도 그때는 참 예뻤는데.  

 그러다 언제부턴가 항상 불행한 표정이었지.

 나한테 불행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네 그런 얼굴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아나?

 

 지금도 미안하면서도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제대로 노력도 한번 못해보고 헤어질 순 없잖아."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소 취하를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협조적인 부모로서의 관계를 잘 만들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부부가 되고자 결심이라도 한 듯 살았던 터라 이날 남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에 손에 꼽힐만한 양과 질이었습니다.


남편이 펼쳐 내민 우리의 옛날이야기 몇 페이지.


서점에서 낑낑거리며 사온 책 중 <부부 감정 치유>를 뒤적거리다 '헤어져야 할 때인지를 아는 방법'을 펼쳐놓았어요. 그 앞에서 남편이 들이민 우리의 옛날이야기 몇 페이지를 저도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그와의 첫 만남, 그와의 연애사를요.


13년 전이네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저는 면접 참여자로, 남편은 면접관으로 만났습니다.


며칠 후부터 출근하게 되었어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남편은 어딘가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곧 잘(사실 매일) 나타났습니다.


가까이서 본 남편은 항상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솔직해 보였어요. 사람이 많은 지하철과 버스 안, 엘리베이터에서 저를 보호(?)하려는 액션을 크게 해서 저를 민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정팔이처럼 몰래 힘만 주는게 아니고 거친 말을 잘 해서요). 그런데 한 번도 누군가 저를 위해 그런 남사스러운 짓을 해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싫지 않았습니다.

 <응답하라 1988> 만원버스에서 덕선이를 보호하려는 정팔이의 성난 팔뚝. 제 남편은 이런 성난 팔뚝은 없습니다.

저에 대해 궁금해하고 묻고 기억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조용히 저의 사소한 일상을 채우기 시작하며 가까워졌어요. 저는 졸업과 함께 진로를 고민했고 남편은 이직 고민을 했습니다. 함께 퇴사를 했고 직장 선후배가 아닌 남녀로 만남을 이어갔어요. 그때 이후 각자 원하는 진로방향을 찾아갔고, 3년 반 연애 후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살았어요. 특히 '화'는 내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성격이 다른 남편과 한 울타리에서 살며 부딪히다 보니 '화'를 알게 되었어요. 서로 화를 내다보니 너무 힘들었고, 그 감정에 지배당하는 기분이 들어 '화를 건강하게 잘 내고 싶어서' 교육을 듣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남편 탓'이라도 하면서 제 감정에 솔직해지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긍정 노력이랄까요;;)


남편은 열도 많고 목소리도 크고 사용하는 단어도 거칩니다. 맥락 없이도 잘 욱-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요. 욱이 올라오면 한 동안 서로 힘든 상황이 된다는 것도 알지만 변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다 억누르고 좋은 사람인 척하며 사는 게 맞는 거냐고 저에게 처음으로 물은 사람입니다. 저도 화를 내도록, 감정을 터뜨리도록, 제 감정을 있는 힘껏 밀어붙이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처음 꺼내본 저의 '화'. 그 '화'의 첫 고객님이 남편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억누르기만 했던 저의 여러 가지 감정을 남편으로 인해 표출해보고 계속 발견하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편이 내민 우리의 옛날이야기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그와의 첫 만남, 우리의 연애사를 솔직하게 마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남편의 이야기 스위치'는 off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off를 누른 건 아닌 건가?


얼마 후 우리는 마지막 부부상담을 종료했습니다.


남편에게 '우리의 이야기 스위치'는 언제나처럼 on이었고, 저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 스위치'의 off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소 취하 과정의 이야기는  이전 글 참조 부탁드려요)



이 글은 <가트맨의 부부 감정치유>의 12장 '헤어져야 할 때인지를 아는 방법'에 실린 내용과 제 개인적인 경험을 옮긴 것입니다.


8월 중순, 장마기간이기도 하고 임시공휴일로 연휴를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이럴 때 부부가 함께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지만, 평소와 다른 상황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당신과 나의 On air 인 지금 이 순간들.


이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회색지대 없이

'좋았다 vs 별로였다' 둘 중 하나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지금 이 순간들을 어떻게 기록할지의 선택권은 각자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신뢰로운 경험을 쌓아 '좋은 기억'이 하나라도 더 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써내려 갔습니다.


혹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제 글에 배려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널리 이해 부탁드릴게요.


지치기 쉬운 계절,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상처 난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트맨식 신뢰 과학) 가트맨 부부 감정치유>, 존 카트맨·낸 실버 지음, 최성애 옮김, 조벽 감수, 을유문화사, 2014


발행 후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어제 발행하고 나서 잠을 설쳤습니다.

지금 제 삶에 대한 변명의 글을 포장하여 쓴건가 싶어서요. '솔직하게 썼는데 부끄러워서 견뎌야 하는 것'인지, '솔직했다기 보다 변명한 것이라 수정이 필요한 것'인지. 발행까지 해놓고 고민하네요. 발행 전에는 이렇게 까지 생각이 안들었는데요...고민 후 이 글이 제 지금 삶에 대한 변명이라 여겨지면 수정을 하거나, 수정이 힘들면 발행취소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발행 전에 충분히 더 고민하고 퇴고하고 발행해야겠다 한번 더 다짐합니다. 댓글도 달아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널리 이해 부탁드립니다...


진상(?)짓 그만하고 원래 하던대로 하겠습니다~!

스스로 고민하여 쓴 글이고 덧붙여 주신 댓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오늘 읽은 몇 문장으로 변명을 대신하겠습니다. 항상 곱지도 않은 글에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_사랑이 삶을 지배하는 이유

이 모든 소란과 흥분은 왜일까? 이런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은 왜일까? 왜 그런 하찮은 것이 이다지도 중요하게 다가올까? 여기 의문의 대상이 된 것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철저히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모든 사랑 놀음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 삶의 다른 어떤 목표보다도 실제로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생각의 나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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