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몰랐던 풀로 얻은 작은 행복의 맛과 향
"참비름, 어떻게 먹었어요? 맛있던가요?"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마주친 여사님께서 멀리서 목례를 나누자마자 웃으며 저에게 다가오십니다. 저는 공무원 조직에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다른 직원들과는 독립된 작은 공간에서 저 혼자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신경이 좀 쓰이셨는지 미화 업무를 하시는 여사님께서 오며 가며 말도 걸어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시고 점심시간에 갈만한 맛 집도 알려주시고 하세요.
지난 금요일 오후. 4시에 조퇴를 하고 방학인데 불구하고 등원한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퇴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어요. 제가 있는 공간 근처로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며칠 사이 익숙해진 발걸음이 느껴졌습니다. 여사님이요.
여사님은 오후 3시가 퇴근시간인데, 아직 안 가신 건가 하며 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황갈색 티셔츠를 입으신 채로 이마에 비 오듯 흐르는 땀도 닦지 않으신 채 뭔가 신이 난 표정으로 여사님이 오셨어요.
"바빠요?"
"아뇨~ 안 바빠요. 아이고,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셨어요~"
"하하, 혹시 땡초 좋아해요?"
"땡초요? 그럼요~ 매운 거 엄청 좋아해요."
"아~ 잘됐네. 내가 이 건물 옥상에서 땡초를 좀 키우는데, 이번에 너무 맛있게 익었어요. 매운데, 단 맛이 있어요. 맵기만 하면 맛이 없잖아요. 근데 이번 고추가 야무지게 생겨가지고는 매운데 단맛이 있어요. 좀 줄게, 가져가서 먹어봐요."
"우와, 고추 향이 정말 좋네요. 저희 친정 부모님도 시골에서 조그맣게 고추농사도 지으시거든요."
"그래요? 다행이네.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이런 거 주고 그러면 싫어할 거 같아서 좀 걱정했거든요.
안 먹는 거 괜히 준다고 그러면 귀찮잖아요. 나는 이게 정말 좋아서, 맛있어서, 나눠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이런 귀한 거 얻어먹는데, 제가 감사하죠"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네요. 그러면 혹시 참비름도 좀 줄까요?"
"참비름요? 그건 뭔데요?"
"나도 참비름은 이번에 알았어요.
몇 개월 전에 이 건물 옆에 화단을 새로 만들면서 흙도 새로 사서 뿌리고, 꽃이랑 나무도 다 사다 심고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잡초는 아닌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는 풀이 막 자라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베어 버리자니 뭔가 아까운 것 같고 그래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한 날은 같이 일하는 다른 분이 이 풀을 보고 참비름이라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여기 있지, 하면서 여름에 나물로 무쳐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며 뜯더라고요.
맛이 있든 없든 나는 처음 들어본 거고, 안 먹어 본거고 해서 괜히 먹었다가 병 걸리면 어쩌나 싶어서 나는 안 가져갔어요. 안 가져갔는데 따가신 분이 먹고 와서는 정말 맛있더라며 또 따가시더라고요.
나도 나물이라면 참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한번 먹어볼까... 싶어 지더라고요.
따가서 손봐가지고 어제 처음으로 해 먹었는데,
세상에.... 너~~~ 무 맛있는 거라.
히야~~~ 진~~~ 짜 맛있더라고.
어제는 집에 간 맞출 양념이 진간장 밖에 없어서 살~짝 데쳐서 간장 넣고 마늘 좀 다져 넣고, 참기름이랑 깨소금 넣어서 무쳐서 방금 한 밥에 비벼 먹는데, (꿀꺽)
세상에나... 너무너무 맛있더라고요."
여사님은 혹시 독이라도 들어있어서 먹고 죽을까 봐 외면하셨다던 참비름을 뜯어서 나물로 무쳐 드신 이야기에 집중하시며 땀 한번 훔치지 않으셨어요.
마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조그만 사무실 안에서 참비름을 데칠 물이 지금 펄펄 끓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땀을 흘리시면서요.
갓 따와 손질한 푸릇푸릇한 참비름을 끓는 물에 넣으며 건져낼 적당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부진 눈빛, 데친 참비름을 진간장과 고소한 참기름에 무치고 있는 듯한 섬세한 손동작, 그리고 무쳐진 나물을 갓 지은 밥에 올리고 무심한 듯 슥슥 비벼 입에 넣으시며 지으셨을 법한 행복한 표정!
친정 엄마 연배로 보이시는 여사님은 흠뻑 젖은 티셔츠와 흐르는 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이름도 몰랐던 풀에서 경험하신 놀라운 향과 맛을 신나게 이야기하셨어요. 그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맛있었어요 정말.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잘 안 먹고 사니까, 사실 내 입에는 정말 맛있어서 먹어보라고 하고 싶은데... 입맛은 사람마다 다른 거고 하니까... 먹어도 맛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괜히 주책스럽게 얘기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싶기도 하네요. 하하."
"아니에요. 저 애 엄마라서 맨날 뭐 해먹을지가 최대 걱정인걸요~ 방금 만드신 방법도 얘기해주셔서, 오늘 저녁 반찬 걱정 덜었다 싶어서 신나던 참이었어요. 그리고 저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초록색 나물 정말 좋아해요. 저도 정말 먹어보고 싶어요."
"그래요? 아기 엄마였어요? 나는 아가씨인가 했지~"
괜히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무척 좋은 걸 봐선, 정말 아줌마가 되긴 되었나 싶답니다. 하하
"하하. 말씀 감사해요. 애가 6살인데, 나물 잘 먹거든요. 주시면 감사히 먹을게요."
"그래요. 잘됐네. 이만큼 줄게요. 그럼 이거 소금 좀 넣고 딱 30초 정도만 데쳐요. 너무 오래 데치면 미끄덩 거려요. 그리고 나는 어제 집에 진간장 밖에 없어서 진간장으로 간을 했는데, 된장 있으면 된장 조금 하고 고추장 조금 해서 마늘 다진 거랑 참기름, 깨소금 넣고 무쳐봐요. 그렇게 먹어도 맛있다 하더라고. 그 참비름 나물 알고 먼저 따간 사람이. "
"30초만 데치고, 진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으로 간해서 먹어볼게요. 맛있을 거 같아요.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생전 처음 본 풀이라 먹으면 병이라도 날까, 혹시 독이라도 있어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도 먹고, 다른 직원도 먹어 봤는데, 안 죽었어. 하하. 너무너무 맛있어. 먹고 죽지는 않으니까 그럼 한번 먹어봐요. 하하"
여사님이 손질까지 해서 나눠주신 참비름과 땡초 여사님은 정말 정말 맛있다는 말씀을 계속하시며 꼭 30초 정도만 데치라고 당부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여사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참비름 나물을 무쳐봤어요.
남편이 된장 고추장 넣고 무치는 나물을 좋아해서 저는 그렇게 해보았답니다. 끓는 물에 소금 좀 넣고 딱 30초 데쳐서 꺼낸 참비름을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짜고, 시어머니 10년 단골가게에서 손수 만드신 된장과 친정엄마표 고추장과 참기름, 참깨를 넣어 허술한 제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냈습니다.
여사님께서 행복한 표정으로 입이 마르도록 말씀하신 맛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싱크대에 선 채로 얼른 한입 먹어봤습니다.
허술한 제 손으로 무친 참비름 나물이지만 참비름 본연의 향과 맛이 좋아서 맛이 없을 수 없었어요 햐~~~~ 정말 처음 느껴보는 향과 맛이었어요! 한 입 먹고 눈이 뜨였다고 해야 할까요?
방금 먹었는데, 분명 맛있었는데, 그 맛이 계속 궁금해서 몇 번을 계속 집어 먹었답니다. 그렇게 먹다간 서서 다 먹어 버릴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고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두었어요. 다른 식구들도 먹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김밥을 자주 싸는 편이라, 금요일 저녁 야참으로 꼬마김밥을 싸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꼬마김밥의 초록색 담당은 참비름 나물로 정하고 넣어보았답니다. 은은한 향이 나서 고급진 맛이 느껴졌어요.
참비름 나물을 넣은 꼬마김밥 남편과 아들도 오래간만에 신나는 젓가락질을 하였답니다.
이렇게 참비름 나물은 그날 저녁에 동이 났어요.
참비름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글이 있더군요.
7월이면 밭고랑에 풀들이 기승을 부린다. 강아지풀은 꼬리를 흔들고, 바랭이는 낮은 포복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명아주는 부쩍 키가 자란다. 쇠뜨기며 달개비도 지천이다. 비로소 농작물과 풀들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풀들은 농작물을 위해 뿌린 거름을 슬쩍 얻어먹고 몸이 튼튼해진다. 여차하면 야생에서 단련된 뒷심으로 밭을 송두리째 뒤덮을 기세를 과시한다. 이런 골칫거리 풀들 중에 유난히 반가운 게 있다. 참비름이다. 좀 과장하면 나는 참비름 나물 앞에서 사족을 못 쓴다.
(중략) 끓는 물에 데쳐서 깨소금, 마늘, 다진 파, 참기름으로 양념해 무쳐 먹어야지. 도시락 반찬으로도 넣어 가야지. 소금 대신 된장을 넣기도 하지만 참비름 특유의 향을 제압해서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10여분 풀밭 모기에 쏘이며 참비름을 뜯었을까. 금세 소쿠리 가득 넘쳤다. 시장에 내다 팔면 만원 어치는 되겠는걸. 나는 휘파람을 불며 친구들 앞에 참비름을 펼쳐 보였다.
- [안도현의 발견] 참비름, 한겨레, 2013.6.30
"좀 과장하면 나는 참비름 나물 앞에서 사족을 못 쓴다"
저는 이제야 한번 먹어봤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여사님은 제가 가져간 참비름을 어떻게 잘 먹었는지 궁금하셨던 게지요. 뵙자마자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인사를 드렸어요. 된장과 고추장에 무쳐 먹었다고 말씀드리니, 참비름이 조금 더 자라면 다시 따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다음번에는 소금이나 진간장에 무쳐먹어 보라시면서요.
그 말씀에 안도현 시인의 글도 떠올라 다음에는 소금을 넣어 먹어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사님은 오늘 저녁 고민까지 해결해 주셨어요. 옥상에서 키우셨다는 매우면서 단맛이 나는 땡초!
땡초 듬뿍 썰어 넣고 양파, 팽이버섯, 소고기를 넣어 강된장 만들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만드는 법을 상세히 얘기해주셨어요. 오늘 저녁에는 복닥복닥 강된장을 끓여 봐야겠습니다.
참비름은 들판에 흔히 자라는 풀이고, 인가 가까운 풀밭에 난다. 어린순을 나물로 하거나 국에 넣어 먹는다. 맛이 담백하며 시금치와 흡사하다. 꾸준히 먹으면 변비를 고칠 수 있고 안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쓴맛이 없으므로 데쳐서 찬물에 한 번 헹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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