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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Aug 10. 2020

출근해보니 눈썹을 집에 두고 나왔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글을 읽고

뭔가에 정신이 팔리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현관문을 나서게 되는 날이 있지 않나요?


예를 들면 양말을 짝짝이로 신는다거나, 슬리퍼를 신고 이미 출근길 차에 올라타버렸다거나,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나와버려 깜놀한다거나(저는 아니고 제 주변에 이런 분이 계셔요ㅜㅡ) 그런 종류의 모습이요.


저는 오늘 출근해보니 눈썹을 집에 두고 나왔더라고요. 제가 쌍꺼풀도 없고 눈썹, 속눈썹도 거의 없어서 나름 그 세 군데에 매일 힘(아이브로우, 아이라인, 마스카라)을 약간은 주고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눈썹을 그리지 않고 출근을 했더군요. 출근해서 손 씻으러 화장실 갔다가 아... 했답니다. 자신감이 5%쯤은 감소되었지만 원래 짙은 화장은 잘 안 해서 별 티 안 난다 하며 앞머리를 좀 더 풀어헤쳤습니다.


아침에 뭐한다고 눈썹을 집에 두고 왔나 생각해보니,

브런치 때문이었어요.


어제는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 마감날이어서 평소보다 몇 갑절 많은 글들이 올라왔어요. 평소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구독 중인 작가님들의 새 글을 읽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아침에만 읽으면 시간이 많이 모자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제는 늦게 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공모전 주제가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었고, 제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을 작가님 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피드에 계속 뜨고 있는 새 글들. 얼핏 스크롤을 해도 다 읽으려면 한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궁금했고, 하나씩 읽기 시작했어요.


진심으로 삶, 글을 대하는 작가님들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걷기, 계단 오르기, 산책, 글쓰기, 공부, 그림, 매일 나와의 약속 지키기, 도전, 알약 2봉지 등등. 저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의 모양새는 달랐지만 제 눈에는 한결 같이 작가님들의 '열심'이 보였고 멋있었습니다.


동시에 '열심'이 옅어진 저도 보여 스스로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게 눈썹을 집에 두고 나오게 된 발단이네요)

'열심'의 사전적 의미_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또는 그런 마음.

저도 '열심'을 참 좋아합니다. (일을 할 때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길 때도 있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열심'에 의미를 두고, 가능한 한 '열심'하려 노력해요. 그런데 언제부터 '열심'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남들과 나, 조금 더 젊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 결혼 전 나와 지금의 나, 출산 전 나와 지금의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던 나와 지금의 나.


비교할 필요가 없는데도 비교를 하고 남과 나의 다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간극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능력 없음'으로 받아들이곤 해요. 다시 '열심'히 무언가를 할 의욕도 잘 생기지 않고요.


이 와중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을 붙들고는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떤 때는 어느 것에도 '애를 쓰고 싶은 마음'(원래 제가 애용하는 표현인데요ㅜ)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애쓰다'의 사전적 의미_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어젯밤은 다른 분들의 '열심'을 읽으며 '열심'이 옅어진 제가 마음에 안 들어 몸을 계속 뒤척였어요.


저의 브런치 활동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밤늦도록 거실에서 계속 인기척을 내고 있었답니다. 밤늦게 휴대폰 들고 있는 아내를 좋아하는 남편은 없을 거예요. 저는 열린 방문을 한 번씩 힐끔거리며, 자는 아이 옆에서 자는 척을 하며 글을 계속 읽었습니다. (방문을 닫고 싶을 때도 많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열어두고 있어요. 한번 방문을 닫기 시작하면 다시 열기 싫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닫지 않아요.)


그러다 얼마 전 아들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여섯 살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장래희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요. 평소 숫기가 없는 녀석인데 손까지 번쩍 들어서 '상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쿠아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기에 기특하여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저에게 물었어요.


엄마는 꿈이 뭐예요?


...ㄱ..그...그게 말이지... 엄마는.


꿈이나 목표, 장래희망 같은 것은 개인마다 가지는 의미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는 '글을 쓰든 무엇을 하든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남편 도움 없는) 경제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 꿈이고 목표입니다.


성취를 위해서는 기한도 정하고 좀 더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거나, 계획을 덧붙인다면 '현실화'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 싶어요. 젊은 사람 꿈이 뭐가 그러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이 정도가 꿈이라면 꿈,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몇 년 전 까지는 연도별 가족들의 나이를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인생 로드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10여 년간 매해 새로이 계획하는 계획표와 함께 그 로드맵을 너덜너덜해지도록 들고 다니며 해마다 바뀌는 다이어리에 꽂아 항상 가지고 다녔지요. 꼭 그렇게 살고야 말겠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계획만 세우고 열심히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인지, 계획이 잘 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 번도 상상 한 적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계획은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긴 하지요. 하지만 지향하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긴 한가 봅니다. 그런 후에 저만의 속도로 제 상황에 맞는 앞으로의 꿈, 목표, 계획으로 조정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비교적 생각과 걱정이 많고 손도 느려서 준비하는데도 오래 걸려요. 하지만 '왜' 하는지가 스스로 이해되고, '어떻게' 할지가 정리되고 나면 흔들리지 않고 마무리가 될 때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견디는 편입니다.


지난밤 브런치 작가님들의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에 대한 글을 접하며 저에게서 옅어진 '열심'에 대한 변명, 아들이 꿈에 대해 물어봤을 때 얼버무렸던 답을 찾다 보니 잠은 부족해지고 불쾌지수는 높아져 월요일부터 눈썹을 빠뜨리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퇴근 후 오늘 아침 빠뜨리고 나온 눈썹을 챙길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내일부터는 저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을 찾아 눈썹을 빠뜨리고 다니든 아니든 괜찮은 제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빈치가 16년간 30겹 이상의 물감층을 쌓아 사망직전에야 완성했다는 눈썹이 없어도 아름다운 모나리자.나도 오래걸리는 사람이지만 나의 '열심'으로 '완성'을 향해 묵묵히 갈수 있길

* 사진출처 Zuzana _ Unsplash

   https://unsplash.com/photos/DM5iENjc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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