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nina Jan 08. 2021

늘 챙겨놓는 차 한잔의 의미

'차 한잔은 때로는 세계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

마음속 허기를 달래주는 한잔

그와 카누(가끔, 시그니처)


저희 집 곳간에는 쌀은 비어도 비지 않게 채워 두는 것이 있습니다. 커피예요. 남편은 밥은 걸러도 커피는 하루 열 잔 이상 마시거든요. 밥이 배를 채워주듯, 차 한잔이 채워주는 마음속 허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곳간에 커피를 떨어뜨리지 않는 이유죠. 남편이 스스로 챙겨 먹는 건 거의 커피밖에 없어요.


평소엔 빨간 글자 카누를 사놓는데요, 얼마 전엔 크리스마스라 번쩍이는 구릿빛 글자가 적힌 카누 시그니처사뒀어요. 시그니처도 인스턴트커피지만, 가격이 1.5배 정도 차이나요. 자주 사지는 않아요.


뜨겁지 않은 적당한 온도가 취향인 남편은, 자신만의 온수와 정수의 황금비율이 있대요. 얼마 안 되는 커피크림을 후ㅡ불며 마시는 첫 모금을 즐기는데, 종종 그 한 모금을 저에게 권해요. 시그니처 박스를 개봉하며 기분이 좋은 그런 날이요.


"캬, 누가 탔는지 진짜 잘 탔다. 특별히 한 모금 준다. 자~"

"오! 누가 탔는지 정말 잘 탔네."

(호들갑스런 반응을 하죠. 미적지근한 온도가 제 취향은 아니지만, 좋은 기분을 권했다는 것은 좋은거니까요.)


차 한잔이 뭐라고, 김장김치 그리고...

여사님과 믹스커피


지난 연말, 몇 개월 간 하던 일이 끝났습니다. 미화 여사님과 하루 두세 번은 마주했는데요, 여사님이 저를 찾으셨던 이유. '믹스커피'가 한몫했어요.


10여 년 간 사람 대하는 일을 하며, 사비가 좀 들어도 커피와 차(tea)는 늘 준비해둬요. 이번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어르신들, 쌀쌀한 바람맞으며 온 동네를 청소하셨거든요. 따뜻한 차 한잔은 편히 드셨으면 했어요. 미화 여사님들도 그랬으면 했고요.


아침마다 여사님은 마당부터 사무실, 복도, 화장실까지 클리어하시고 나면, 티타임을 하러 오셨어요. 


"선생님, 나 커피 한잔만, 오호호호."


컵에 믹스 한봉과 뜨거운 물을 붓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시죠. 새로운 모임에서 엉겁결에 다섯 살이나 적게 소개하신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점심시간에 불은 국수로 식당 사장님과 옥신각신 하신 이야기, 불안증으로 병원 다니시는 이야기 등등이요. (지난여름, 참비름 나물이 맛있다며 나누어 주신 그 여사님입니다)


"선생님한테 별소리를 다해요"


여사님과 별소리 다하는 하루하루가 흐르고, 저의 마지막 출근 날이 되었습니다.


"내가 옆에 가는 거 불편해하는 직원들 있거든요. 그래도 마음알아 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마음을 알아주면 뭐든, 전부 다 주고 싶기도 하다니까. 내가 맨날 와서 이야기하면 귀찮기도 했을 건데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동안 커피도 잘 마셨고.


이거 어제 담은 김장김친데, 맛이나 보라고. 입에 맞으려나 몰라. 이건 만두. 저녁에 아들이랑 잡숴요. 근데 만두가게 사장이 만두 담다가, 만두피가 좀 벗겨졌어. 사장한테 얼마나 뭐라 했는지 몰라. 내가 먹을 거면 상관없는데, 선생님 줄 건데 벗겨져서ㅡ. 아무튼, 올 한 해 내 가장 큰 행운은 선생님 만난 거였어."


일하는 동안 저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한심하게 바라볼 때가 많았어요. 어쩌면 좋은 사람인 척, 자기 만족으로 챙겨둔 커피와 차(tea)였고요. 수-욱 꺼지는 커피박스 안을 보며 '또 사야 되네' 할 때도 있었거든요.


여사님은 믹스커피 한 개, 단가로 치면 100원 정도인데, 오다가다 그 한잔과 수다 나누셨던 게 좋으셨다니. 누구나 차 한잔은 편하게 했으면 하는 제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벗겨진 만두피로 속상해하셔서 황송했고요.




차 한잔과 미뤄둔 대화

나와 남편의 커피는 식어갔지만


지난 연말, 그렇게 여사님의 김장김치를 들고 퇴사했습니다. 남편은 타지로 일하러 가게 되었고요.


차 한잔과 함께, 언제부턴가 묵혀둔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매일 볼 때는 미루고 미뤘죠. 막상 얼굴 마주할 기회가 줄어드니, 숙제 같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화나 글보다는 얼굴보고 해야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된장찌개에 갈치 구이네. 잘 먹을게."

(껄끄러운 이야기는, 포문을 여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일단 배를 채우고 시작하는 게 낫죠. 누구나 배고프면 예민해지니까요. 긴한 대화를 하기로 결심한 날은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가 등판합니다.)


"김치는 미화 여사님이 김장했다고 주신 거. 올해 나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면서 주시더라."

(괜히 평소에 안 하던 실없는 소리도 좀 하고요.)


"아~ 네, 어련하시겠어요. 김치는 맛있네."

(말은 이렇게 해도 기분 좋게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다 한 거예요?"


"어, 잘 먹었어. 이제 커피 한잔 해볼까. 네 것도 타?"


"응, 고맙지. 근데 있잖아."

(남편이나 저나 일터에 가면 평판이 나쁜 편은 아닌데, 둘이 만나면 세상 제일 대화 못하는 바보가 됩니다. 그 사실을 아는 제가, 먼저 말을 꺼내는 편이죠.)


'왜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대화'비슷한 것도 안되지?' 예전엔 불만이었어요. 같은 말도 아내인 제가 하면 듣지 않다가 어머님이나 아주버님 말씀이면 듣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먼저'말을 꺼내든, '누구의 말'이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그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남편과 저는 자산이랄 것도 없는 상태에서 수입이 불안정했어요. 일상생활 하는데 드는 비용 외에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기도 했고요. 각자 수입은 각자 관리했어서 서로의 자산과 부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 없었어요.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부분을 꺼내기 시작하면 줄줄이 비엔나처럼 지난 시간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따라 오죠.)


말 꺼내면 분명 투닥거릴 거라서 그냥 둔 것이 가장 컸어요. 서로 알고 있을 거라 짐작만 하며 말로 꺼내지 않기도 했고요. 해야 할 대화를 하지 않고 그냥 둔다고, 그 틈이 사라지거나 작아지거나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따뜻했던 커피는 식어갔어요. 남편과 저는 무표정과 한숨 섞인 침묵, 침묵을 깨는 몇 마디와 다시 한숨 섞인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남편은 저녁을 잘 먹은 후라 배가 불러서 곧 나른해졌어요. 예민한 내용의 대화였지만, 줄줄이 비엔나 같이 길어서, 끊고 다음날로 넘겼습니다.)


커피가 식어가는 날은 며칠 더 이어졌어요. 몇 주가 흐르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 대로, 불필요한 기대 없이, 크게 낙담할 것도 없이. 조금씩 더 편해지고 있어요.


"커피가 다 식었네. 이거 마실 거예요?"


"그럼, 마셔야지. 시그니천데. 뜨거운 물 더 부어서 마시면 돼."


"꿀 한술 넣어줘요?"


"꿀?"


식은 커피에 꿀 한숟갈, 뜨거운 물 더 붓고 달달하게 마무리


좀 피곤할 땐 커피에 꿀 한술 타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에요. 피곤한 이야기를 했으니, 꿀 정도는 뭐.


결혼하고 몇 년간 남편은, 어머님께서 타 주신 커피에는 '이 맛이지', 제가 타 주는 커피에는 '뭔가 맛이 부족해'하곤 했어요. 지금은, 어머님께서 커피를 타 주시면 너무 쓰다느니, 물이 많다느니 합니다.(어머님은 '나쁜 X. 늙은 애미가 타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그냥 마실 것이지. 이리 내놔' 하시죠)


미우나 고우나 함께 투닥거리며 사는 동안, 남편 입맛에 맞는 커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어머님에서 저로 바뀌어서 그렇겠지요. 서로에게 적응한 걸 수도 있고요. '이제는' 슈퍼에서 자기 커피를 살 때, 10번에 두세번은 저를 위한 것도 골라오는 남편입니다. 서로 아무리 투닥거려도 곳간에 카누는 항상 채워져 있고요.


따뜻한 커피든 식은 커피든, 이제는 이렇게 차 한잔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 같아요.


     차 한잔의 평화

     여유로울 때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비참과 불행 속에서 받아 든

     차 한잔은 그 자체로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어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은 이렇게 묻는다.

     "세계가 파멸하는 것과 내가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는 것과 어느 쪽이 큰일인가!

     설사 온 세계가 파멸해버린대도 상관없지만,

     나는 언제나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마셔야 한다."

     세계의 파멸보다 한 인간이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 더 큰 불행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 한잔은 때로는 세계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산문집, 달 출판사, 2017


누구나 가끔은 밤고구마 같은 페이지위에 서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을 거예요.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아서 안타깝고요. 그래도 그럴 때 커피 한잔, 차 한잔으로 마음을 막히지 않게 조금은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한 모금,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생각했으면 해요.


언젠가 밤고구마 같은 페이지도 

끝은 있을 거라고요.

그때까지 목 막히지 않게 차 한잔 마시며

내 세계는, 우리의 세계는 평안하게 지켜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며 (민망함에) 붙이는 덧.


작년, 브런치에 개인적인 내용의 글을 처음 써보면서, 벗님들께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고, 선배님 같고, 멘토 같고 그래요.

허술한 저의 글을 기다린다 해주신 말씀들이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들이 저에겐 따뜻한 차 한잔이었습니다. 저도 차 한잔 드리는 마음입니다.


       너를 위한 시간 


       차 주전자에 물을 올렸고, 컵도 준비되었다.

       아끼는 의자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나의 친구, 항상 너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 작자 미상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김용택, 마음의 숲, 2018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바라고 원하시는 일들 많이 이루시고,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갓 지은 밥을 공기에 담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