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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닥터 이상훈 Sep 26. 2018

리듬체조 한국대표팀,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주치의, 어깨박사 이상훈의 아시안게임 리얼스토리

대한민국 리듬체조 대표팀 선수들. 가장 우측이 송희 감독

아시안 게임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한국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 리듬체조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송희 감독님으로부터였다.


"원장님 우리 리듬체조 대표팀 대회 이틀간 팀닥터로 경기장에 동행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송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감독님

전화를 받고 아주 잠깐 당황했다. 물론 충분히 지도자가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긴 하지만, 보통 이렇게 직접적으로 지도자가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스케쥴 표를 보며 고민했다.
다른 여러 종목들 지원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어느 종목으로 지원 나가는 것이 팀에 보다 큰 도움이 될지를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리듬체조팀은 트레이너 지원조차 없고, 코치도 없이 송감독님 혼자 선수들을 인솔하고 경기를 치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 전원이 은퇴한 상황에서 모든 여건이 열악한  종목이었다.


그러나, 저렇게 일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지원을 받는다면..., 뭔가 의외의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고민 후 명쾌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틀간 의무지원 나가겠습니다."


손연재 선수가 은퇴한 이후 이번 한국 리듬 체조팀은 전격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번 대표팀은,16세 전후의 어린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팀었던데, 이들이 메달을 딸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한 대회로 여겨졌다.


약속한 대회 당일, 미리 선수촌의 버스 출발 정류장에 나가서 선수들을 기다렸다.

경기장까지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16살 어린 여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된 느낌이었다.

선수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하면서, 보통은 덕담이라던가, 파이팅을 해주는데 ..

너무 어린 여학생들이다 보니, 행여나 역효과가 날까 두려워 인솔해가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다행히 선수들은 자신만의 루틴으로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하며 멘탈 관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경기장 도착해서 이들이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몸을 풀기 시작하니, 정작 팀닥터는 할 일이 없어졌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리듬체조 한국 국가대표 선수 서고은


이렇게 편한 팀닥터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는데... 사실 편하다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리듬체조 단체전은 4명의 선수가 12 번의 경기를 펼쳐서 점수합산을 통해서 순위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4명의 어린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순서와 경기 시간을 계속 체크하면서 다음 선수들을 코치가 준비시켜야 한다.

1명의 코치가 4명 전체를 컨트롤 하는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이다.
선수는 하나의 연기가 끝나면 재 빨리 다음 공연에 필요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음 연기를 준비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매우 빠듯한데..  이 것을 4명의 선수들이 돌아가며 연속적으로 준비해야 하다보니, 코치진들 역시 정신없이 바빠지게 된다. 당연히 나까지도 뭐 하나라도 도울 부분을 도우며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던 중 서고은 선수가 갑자기 여자 화장실에서 코피를 쏟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뛰어 들어가보니, 현지의 의료진이 지혈하는 방법을 몰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큰 일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지혈하니 코피는 금새 멈추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생긴 해프닝이다 보니 뭔가 큰일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고은 선수는 워낙 기대를 받는 선수였기 때문에, 컨디션에 이상이 없어야 했는데, 의외로 당황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이었다.


정신 없는 와중에서도 선수가 막상 연기를 시작하면, 감독님과 나는 무대 옆에서 선수들의 연기를 관람하게 된다. 리듬체조는 스포츠 경기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예술 공연이기도 하다. 이들의 연기는 정말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이었다.


그런데, 막내뻘인 김주원 선수의 연기가 무사히 끝났는데, 갑자기 전광판에 "-0.75" 패널티가 부여되었다.

리듬체조에서 왠만해서는 0.75점이 한번에 깍여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패널티'로 정확히 명시가 되려면 아예 연기를 플로어 바깥으로 넘어가서 하거나, 연기 시간이 규정타임을 한참 오버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패널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널티가 나올 이유가 없었다.

전문가인 감독님이 절대 패널티가 아니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해주셨다.

한번 더 감독님께 확인을 했더니, 불과 몇달 전의 세계 선수권에서도 완전히 똑같은 안무와 똑같은 음악으로 연기했지만 단 한번도 패널티는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심판과 싸워볼만 할 것 같았다. 어짜피 내 성격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감독님은 선수들을 준비시키고 시합에 시간 맞추어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감독님께 양해를 구하면서 이 문제는 직접 해결하겠다고 했더니, 감독님도 흔쾌히 부탁해주신다.


일단 보조 인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더니 심판에게 뛰어가서 뭔가 대답을 듣고 다시 온다.

"일단 시합이 다 끝난 후 문서로 요청해달라는데요"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메달의 색이 다 정해져버린 다음에 요청해봤자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가 직접 심판과 만나서 항의할 방법은 없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나를 심판에게 데리고 간다. 그러나, 심판의 대답도 명쾌하지 않다


"나도 왜 패널티가 나왔는지 모른다. 일단 이번 인터미션 때 헤드쿼터에 질의해보겠다"라는 심판의 대답..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해서 마지막 제안을 심판에게 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번 인터미션까지 해결이 안되면, 한국 대표팀 조직위에서 공식 항의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지금 즉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거롭지 않도록.. 가능하면 그 전에 명쾌한 답변이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심판들이 다시 모여 이야기하더니 결국 '패널티는 오류 였으니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되찾은 0.75점, 선수들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그 이후로는 큰 사건사고 없이 경기가 진행되었다.

송희 감독님의 지휘아래, 어린 4명의 요정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였고,  결국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동메달 쾌거를 이룩한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나 스스로는 어깨와 팔꿈치를 수술하는 견주관절 전문가이다. 나름 이 분야에서 국제 학회마다 항상 초청을 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어느정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팀닥터로서 코트에 들어가게 되면, 이러한 명성이나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정작 급히 코피를 멎게 하거나, 아니면 감자기 다리가 삔 선수들에게 달려가서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스포츠 현장의 팀닥터로서의 지식은 정형외과 관절전문가로서의 지식 위에 전혀 새로운 현장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선수들에게 '뒤에는 내가 있다. 맘놓고 뛰어라!'라는 위안을 주는 것이 가장 핵심인 것 같다. 그리고, 힘들어할 때 물을 담은 컵 한잔을 주며 수분섭취를 신경 써주고, 긴장해서 땀을 너무 흘리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타월과 물을 건네면서 '조금 천천히 해. 심호흡 한번만 하자'라고 말하는 센스가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국가대표팀은 10대에서 40대까지 이르는 폭넓은 선수층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또 그 나이대마다 대해줘야 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번 리듬체조 팀은 내가 이번에 맡은 팀들 중 가장 어린, 그것도 여자선수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또 섬세한 여고생의 감성이 있었기 때문에, 말한마디라도 조심하면서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접근이 또한 중요했던 것 같다. 

국가대표팀의 팀닥터라는 것은 끝없이 경험하고 공부하며, 어느 나라가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고, 더 나은 접근방법을 개발하는지에 대한 싸움인 것 같다. 나 또한 이들과 함께 최일선에서 싸우는 선수의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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