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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Jan 16. 2022

티어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3, 한 꼬집의 OO

따악!


드라이버에 맞은 하얀 골프공이 하늘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뻗어나간다. 며느리 공치는 모습을 바라보던 게 멋쩍은 듯 멀찍이 자리를 옮긴 시아버지가 보인다. 이제 스무 개 남짓 남은 공이 담긴 녹색 바구니에서 5개의 골프공을 집어서 일렬로 세우고 하나씩 허공으로 보낸다. 1시간 후에 픽업하러 오겠다 한 시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50개의 공을 더 받아놓은 터였다.  


타악!

딱!

헛!!

따악!

딱!


다음은 7 아이언, 다음은 샌드웨지를 차례로 꺼내 일렬로 놓인 공을  개씩 톡톡 쳐낸다. 모든 공을    클럽과 자리 정리를 하고 함께 시아버지의 차를 타고 시댁으로 돌아간다. 혼자 여유롭게  치라고 1시간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데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갔다. 한국인 며느리가 진상을 제대로 부리긴 부렸는가 보다. 하지만 며느리를 골프장에 태워다주고 태워오라는 미션을 받은 시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  없다.


사실 내 마음은 어젯밤 남편과 대화하며 다 풀렸지만, 오늘 아침부터 남편과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보고 있을 테니 골프 치러 다녀오라고 한다. 권유가 아닌 종용이다. 물론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어제 뜨거운 욕조에서 처박혀서 나를 찾는 딸과 점심을 가지고 올라온 시어머니에게도 대답하지 않고 골프라도 치러 나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디어에서 실행까지 버퍼링이 발생하긴 했지만, 다음 날이라도 그들의 방식으로 걱정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안도시켜야 할 것 같다. 체할 것 같던 전날의 눈물의 저녁식사를 한 나에게 심심한 위로도 할 겸.


인생을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였다. 내가 주인이 아닌 킹덤에서 나와  집을 바라보니 어제 울고  살겠다 했던 일도 웃음이 피식 나는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혼자 있고 싶다고 유난스러웠던 손님은 시아버지와 차에  둘이 20분씩 왕복 40분을 함께 하는 벌이 내려졌다.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시간임에도  오디오는  오디오대로 또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가족, 결혼, 이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아버지가  이야기다.




시아버지:

'영국에 아주 재밌고 유명한 여성 코미디언이 있어. 결혼을 5번인가 했을 거야. 어떤 쇼에 나와서 인터뷰를 했는데 사회자가 물었지. 5번의 결혼식이라니... 대단한데요. 궁금하네요. 이혼할 때마다 결혼반지를 돌려줬나요?'


'코미디언이 말했지. 당연히 돌려줬다고. 알은 쏘옥 빼고 말이야.'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백발의 시아버지를 옆에 두고 한껏 웃어본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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