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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Jan 15. 2022

행복할 때에도 글을 쓰고 싶다

비곱한 변명

모두가 그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글은 상처가 났을 때 그 자리가 곪아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특별히 럭셔리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된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글이 드.문.드.문 나온다. 안락한 온실 속에서 아이들과의 하루하루 일상에 감탄하고 감사하고 살다 보니 어쩌면 너무나 소소해서 다양한 감탄사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다. 기타 다른 욕구나 불만은 동글동글 연마되어 흐르진 않아도 마르지 않는 호수가 되어 바람에 나풀나풀거린다.


그래서 글 연습을 위해 행복할 때에도 글을 쓰겠다 다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행복은 아주 소소하게 찰나이면서 눈이 부셔 긴 글로 남기기가 힘들다. 이 세상의 언어에 행복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어휘나 표현이 얼마나 있을까? 우울이나 슬픔에 관련된 어휘나 표현보다 많을까? 우리는 무엇이 ‘얼마나 맛있게요?’라는 질문에 얼마나 맛있는지 5분 동안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혹은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5분 동안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은 행복할  나른하게 긴장을 풀어 영원하지 않을  순간에 온전히 잠길  있도록 세팅된  같다. 돌고래가  독이 나오는 복어를 입에 살짝 물고 아슬아슬한 환각상태를 즐기듯이. 그래서 행복의 순간은 문학보다는 영상, 사진, 음악 혹은 인스타그램  담기는  같다. 행복한 와중에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감각을 깨우고선  행복한지 얼마나 행복한지 글을 남기는 것은 본능과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서 행복할 때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변명의 글을 남긴다. 더불어 인생에 숨어있는 감당할 만큼의 굴곡과 시련을 은연중에 반긴다. 단지 더 길고 깨어있는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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