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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Jan 05. 2022

티어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2, 남의 편 잘 들어

고작 시댁 3일 차에 고장나버린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저녁 식사 와중에 호르몬 검사를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맹렬히 내 자신을 대변한 후 아이를 재우고 마침내 밤이 왔다. 그토록 꼴 보기가 싫었던 남편을 찾아 주방으로 내려갔다. 마치 학생을 기다리던 교장선생님처럼 앉아있던 남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듣고 있던 헤드폰을 내려놓는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는 신기한 타인, 남편. 


나의 요점은 이러하다. 

1. 시댁에 와 있어도 너는 나를 챙겨야지, 내가 누구와 내 속 이야기를 하느냐. 

2. 나는 밤에 애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남의 집이라 한 시도 맘 편히 있지를 못 하는데 혼자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아침에 퍼지지 말아라.  

3. 다시 시댁에 오게 되면, 중간에 나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달라.


남편의 요점은 이러하다.

1. 아침에 일어나서 애들 보는 것이 힘든가? 힘들면 말을 해달라.

2. 말 안 하면 어떻게 아는가. 

3. 모두에게 물어보라. 


항상 그렇듯 또 빙글빙글 돌아간다. 


1. 우리가 여기 와서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는가?

2.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댁에서 긴장 풀고 술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퍼지지 말라. 밤에 잠을 잘 못 자니 아침이 제일 힘들다. 아침만 넘기면 된다.

3.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다.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 너의 이해와 배려. 


한계점이 온 그는 할 말이 있지만 더는 할 수 없는 눈동자가 되어 빙글빙글 돈다. 무턱대고 '미안해'를 남발하거나 건성으로 '알았어 알았어'로 넘어가지 않아서 좋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내 생각을 계속 전달하면 잔뜩 상기된 표정이지만 듣고 있어서 좋다. 모두가 내 편이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너 남편, 당신은 내 편이어야지. 그게 내가 이 결혼이란 모험을 감행한 이유라고. 시댁에 와서도 내가 어떤지 챙기라고. 당신은 집에 와서 매우 편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으니 나에 대해서 잠시도 그 긴장을 풀지 말라고.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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