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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Feb 15. 2024

고기 권하는 사회

#비건 옵션으로 시켰는데요?

내가 비건이 되면서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 중 하나는 내가 비건이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겪을 지도 모르는 불편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건이 아닌 친구들과 만날 때는 완전 채식 식당 보다는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을 더 선호하고,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때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기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때도 많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얼마 전, 홍콩에서 함께 일했던 옛 직장 동료가 한국에 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비건이 된 이후에 만난 적이 없는 친구라 역시 비건 옵션이 있는 일반 식당으로 알아보았고, 그렇게 "비건 옵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게 되었다. 아기자기하고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에 기대감 가득, 나는 비건 팟타이를 골랐다.


막 음식을 받아 먹기 시작하던 중, 내가 시킨 팟타이에서 손바닥만한 새우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모형 새우인가 싶었다. 조금 뒤적여보니 총 다섯 마리의 새우가 있었다. 그것도 왕 큰 놈들로...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이 메뉴가 비건이 맞는지 물었다. 직원 (사장님 처럼 보였다)은 깜짝 놀랐고, 내 팟타이는 직원의 실수로 비건이 아닌 새우팟타이로 주문이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은 말했다. "소스는 비건이에요." 그 말에 반하게, 내 팟타이에는 양념에 들어간듯한 자잘한 새우도 들어있었다..직원은 음식을 다시 만들어주는 대신 무료 와인 두 잔을 권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내가 비건이라는 이유로 유난떤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직원이 실수로 내 메뉴를 논비건으로 만들었더라도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음식을 만들어줄 생각조차 없는 이 직원을 보면서 비건이라는 내 선택 (메뉴 뿐만이 아닌 내 신념 자체)을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이 직원은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먹어서 죽는 게 아니니 그냥 군말 없이 먹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비건이라고 유난스럽게 행동하고 싶지 않지만, 내 신념이 육체적인 건강이나 알레르기만큼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비건 옵션이 있는 맛집으로 유명한 이 식당에서 이 경험을 하고나니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이 난다. 우리는 아직 고기, 해산물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고기, 해산물, 그리고 유제품을 먹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듯이, 그 음식들을 먹지 않겠다는 내 선택도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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