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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Dec 29. 2023

우리는 사랑일까?

삼십대의 연애 이야기.

스물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애를 시작했다. 여고, 여대 (중에서도 공부량이 많은 법대)를 나오고 화장품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자와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출장차 갔던 홍콩에서 첫 남자친구를 만났다. 내가 홍콩으로 직장을 구하면서 우리는 1년 간의 롱디를 끝냈고, 모든 짐을 싸서 홍콩으로 갔던 그 날 남자친구의 바람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끝났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불리는 홍콩은 슬쩍 보기에는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홍콩에서의 삶은 치열하기 그지없다. "누구나 한 번은 짤린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직장생활이 불안정하고, 바쁜 도시에서 나 혼자 뒤쳐지지 않게 원치 않는 파티를 하기도 한다. 엑스펫(Expat - 흔히 몇 년간 거주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떠나는 외국인을 일컫는다.)이 많은 도시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고 깊은 연애를 원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연애보다는 커리어, 밤문화, 액티비티, 그리고 친구관계에 집중한다. 특히 돈을 좀 번다하는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가벼운 관계만을 원하며 이성을 이용하는 연애만을 고집하는, 대도시의 전형적인 연애형태가 홍콩에도 난무한다.


이곳에서 처음 남자친구를 만났던 나는 연애에 대해 마음이 닫힐대로 닫혀 있었다. 5년 간의 홍콩생활에서 연애를 쉬어본 적이 없지만, '내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적으로 해온 나는 점점 연애에 회의적으로 변했다. 2023년 초, 홍콩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내 마음은 더 닫혔다. 더이상 이십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할 나이가 되어 비슷한 사람을 찾아 결혼한다면 평생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반 포기한 상태로 '어쩌면 나는 내 짝이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애를 반 포기하고 지냈다.


한국에서 반 년 이상 살면서 남자를 거의 만나지 않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던 그 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던 그 날,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통이 큰 청바지를 입고 나갔었다. 그만큼 기대가 없었다. "그냥 저녁이나 먹지 뭐" 라고 생각하고 나갔던 그 날, 나는 이 사람을 보자마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다. 첫 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이미 오래 알아온 사람을 만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캐나다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기에, 이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이 남자는 짧은 한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세번째 만남을 만들어냈고, 캐나다에 돌아간 이후에도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운명'의 상대, '내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그 운명의 상대는 정해져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걸까? 수 차례의 연애를 거듭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어렵게만 느껴져갔지만, 이번에는 이 사랑을 믿어보고 싶다.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운명일까? 서른 두 살의 연애도 이렇게 풋풋하고, 설레고, 포근할 수 있다. 꼭 결혼이라는 압박에 밀려하는 소개팅이 아니어도,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삼십대의 연애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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