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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Jan 14. 2024

데이팅앱 범블(Bumble), 이루어질까?

캐나다 남자, 그리고 한국 여자의 연애기

한국으로 돌아온지 딱 반 년쯤 되었던 지난 늦여름 어느 날, 베이킹 클래스를 마치고 친구와 와인을 한 잔 하고 있었다. 재택 근무, 아침 수영, 그리고 베이킹 클래스 외에는 외출도 잘 하지 않던 나에게 있는 간만의 술자리였다. '영어나 까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데이팅 앱에서 외국인들과 종종 대화를 해왔던 나는 이 남자와도 역시 가볍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눴었다. 30대 싱글녀인 우리 처지를 한탄하던 나와  내 친구는 술김에라는 핑계로 이 남자를 우리의 술자리에 초대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술 한잔 하자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출장차 한국에 잠깐 와 있었던 이 남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 자리에 나가 있었고, 방금 호텔에 들어왔다는 핑계로 술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 다음날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미팅이 많았다던 월요일, 이 사람과 오후 네 시까지 연락이 잘 되지 않자 나는 약속을 미루자고 했다. 다섯시가 되어 연락을 해온 이 사람은 나를 다시 설득해 약속대로 저녁을 먹게 했다.


월요일 저녁 8시, 녹사평역 2번 출구 - 유난히 바쁜 하루를 보냈던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통이 큰 청바지를 입고 15분이나 늦게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큰 키에 선한 얼굴 - 허겁지겁 지하철 역에서 뛰어나가던 나를 본 이 사람은 특별히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이 사람은 택시와 버스 중 버스를 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떠나기 시작하는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잡아 탔다. 여대를 나와 주구장창 소개팅을 해온 나에게 처음 만난 남자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정확도 또한 높았다. 역에서 만났던 그 순간부터 식당으로 가기까지 10분도 되지 않는 그 시간동안 나는 확신했다.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Play cool" - 나에게 관심없어 보이는 이 사람에게 나만 관심 있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부담 없이 저녁식사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캐나다 남자에게 해외로 대학원을 가려고 했던 내 계획을 얘기했다. 그리고 호주와 캐나다 중 고민해왔지만, 캐나다의 날씨와 지루함이 싫어 호주로 정했다고 말했다. 오직 나에게 관심 없는 이 남자에게 나도 쿨하게 대응하기 위해..비건인 이 남자에게 비건과 관련된 최소 100가지 이상의 질문을 했다. 직설적인 질문을 시도때도 없이 했기에 무례해 보일까 걱정이 들 정도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출장차 잠시 한국에 온 거 알고 있으니 우리 부담갖지 말고 저녁식사를 즐기자고도 했다.


나를 처음 만난지 딱 5일째 되던 날, 이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5일 동안 총 세 번의 데이트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호감이 있음이 느껴졌지만, 이 사람이 떠나면 다신 이 사람을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루했던 내 삶에, 앞으로 남자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연애를 거의 포기했던 나에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움을 줬던 이 사람에게 고마웠다.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해도 좋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 남자의 바쁜 출장 스케쥴에 내 시간을 맞춰가며 최대한 시간을 냈고, 이 사람이 떠나던 날, 비건 약과를 어렵게 구해 이 사람에게 선물했다. 공항으로 떠나는 이 사람을 배웅까지 해주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아쉬움 조차 남지 않았다.


내가 지루한 캐나다 대신 호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을 때, 이 사람은 내가 '적어도 해외에서 살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리 관계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비건과 관련된 가감없이 질문하는 나를 무례하다기 보다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염없이 자신을 밀어내는 나를 당겨줬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더 내 단점도 사랑스럽게 봐주고,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줬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런 기대가 없을 때 사랑이 찾아왔다.


이 남자는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나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었던 사람이다. 1년의 1/3을 해외에서 보내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에 건너온 캐나다인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데이팅 앱에 회의적이었던 나다. 만약 내 친구들이 데이팅 앱에 대해 물어본다면 과연 추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에 있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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