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뗄라 Dec 12. 2020

#32 내가 겪은: 생계와 혐오, 블루, 앞으로는?

#32 불과 2주, 사건과 생각

결국 퇴사한 무용과 출신 마케터, 이제는 자치구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막내 사원,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1. 매체 앞, 덜덜 떠는 우리, 그리고 캄캄한 미래


지난 주말, 중대본이 발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그리고 나는 예상했다. 한참 시끄럽게 울릴 내 핸드폰을.


그랬다. 나의 친구들은 프리랜서다.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실연자이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이고,

개인 작업을 하는

말 그대로 프리랜서이다.


그게 왜?


2020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나의 친구들은 중대본의 발표에 민감했다.

생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 A는 더욱 심란해졌다.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작년 연말부터 꼼꼼하게 계획했던 것들이

하나 둘 어그러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동안 모아두었던 비상금마저 탈탈 털려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슨도, 공연도 할 수 없게 되자

말 그대로 수입 0원, 백수가 되었다고 한다.


혹여나 몰래 수업이라도 하면 더 큰 타격을 입을까 잠자코 기다리게 된다.

온라인 수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 마저도 솔직히 실기 위주로 진행되는 이 곳에서는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 한다면 하지만, 그것에 대한 질은 누가 보장해주냐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들의 단톡방은 시끌시끌했다.

정부의 입장과 방침은 이해하지만,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로 쉴 새 없이 메시지가 오갔기에.

우리도 알았다. 방법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매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를 호두까기인형과 보냈던 친구들과 나.

나는 그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으로,

내 친구들을 그 공연을 실연하는 무용수로.


코로나로 인해 이 루즈하고, 또 어쩔 땐 지긋지긋했던 연말 패턴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음, 나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일 년을 채 마무리할 수 없었고, 헛헛함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그리고 생계가 달려 있다. 알다시피 회당 페이를 받는 그들은, 공연 한 회 한 회가 매우 소중하다.

무관중 공연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비대면, 영상 녹화에 매우 질려 있었다.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를 나는 이번 12월부터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내치는 아우성에 말이다.

그게 내가 겪은 코로나의 시작이다.


2-1. 밀접 접촉자의 접촉자, 그리고 혐오


친구들의 아우성이 채가시기도 전에, 나에게도 이제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정말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날이었다.


어김없이 출근하여 근무하던 도중,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인의 상사가 코로나 양성이 나왔고, 본인도 격리하다 지금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그래서 근래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있었다고.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고 한참을 멍때리다가, 상부에 보고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혐오"에 휩싸이게 되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는 노필터의 언어들이 날라다니고, 그 언어들을 감싸는 싸늘한 공기가 있는 공간.

그리고 그들이 가진 표정까지.


일을 하면서 내 옆에서 같이 회의하던 사람이 갑자기 양성 판정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그 상황에 닥친 당사자가 더 예민하지, 왜 주변에서 예민하겠는가.


나는 그 날 혼자 갇여있다, 내가 사용한 공간을 방역하고,

어서 가라는 짜증 섞인 소리침에, 제대로 인수인계조차 하지 못한 채 쫓겨 나왔다.

불과 내가 보고 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즈음이었다.


이 험난하고 위험한 시국에 미안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사과를 하며,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는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다. 감사하게도 지인 분이 '음성' 판정을 받아 이만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이미 몸소 겪은 '혐오'는 되돌릴 수 없는 것 같다.


이제 코로나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날의 일로 다시 한 번 경험했다. 인간의 최악을.


나는 쫒겨나오던 그 퇴근 길에, 그 당시 정신이 없어 아무말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분이 찼다.

처음으로 우스갯소리로 하던 '직장 내 괴롭힘'제도에 대해 알아보았고, 쿠x에서 녹음기도 검색해보았다.

가해자는 몰라도, 피해자는 그 음성과 표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증거가 없을 뿐.

그래서 나는 헛똑똑이다.


그리고 끝으로 사직서를 내고 법적으로 언제 수리되는 지도 알아봤다.

그 순간 입을 열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지인에게도 미안하다.


언어폭력과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사생활 침해이자 성희롱.


솔직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한 번쯤 이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책임 소지는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닌 듯 하다.

회사 역시 이 시국에도 이 시국하는 일도 꽤 있었으니. (굳이 공개적으로 적지 않겠다.)


인간의 탈을 쓰고, 미성숙한 태도를 보인.

그리고 문화와 예술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함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이 역시 인지하지 못하기에 더없이 안타깝다.


2-2. 음성과 양성 사이, 인간의 이중성


하버드 마이클 샌델교수의 'JUSTICE'.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매년 초면 이 책을 다시 들고, 한 동안 되짚어보면 읽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이르게 이 책을 들게 되었다.


나의 접촉사건이 음성으로 종결된 바로 다음 날,

인간이란 참 간사하고, 이중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나 혼자 격리 시키더니,

오늘은 같이 점심을 먹자며 부른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혼자 점심을 먹었다.


"인간의 이중성"이란.

어제와 오늘의 태도가 다른 건 왜 때문일까?


그리고 그렇게 코로나로 겁에 질려 했으면서,

왜 그들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일까?


부디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이건 내가 밀레니얼 세대라서, 90년대 생이라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3. 코로나 블루는 '비교'와 '오감'에서 온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비교적 나의 일상을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잠깐 짬을 내어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내 마음의 방역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아니면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 나는 그래도 나은 상황인가보다' 라고 느끼게 된다.

아니지,그렇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너는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 나오고, 잘릴 걱정은 없잖아"


응? 나도 힘들기는 해..

입을 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나보다 더 낭떠러지의 상황이니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아니다.

이것이 나의 심리를 더 고달프게 하는 것 같다.

남들과 비교하여 조금이나마 상황이 낫다는 것에, 받아들이고, 애써 긍정적으로 살려는 것이 말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인정하고,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가 그렇게 만들지 않는 것 같다.


또, 인간에게서 중요한 부분은 '오감'이다.

약 한 달정도 촬영한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다 보았다.

정말 한 장도 현장사진이 없다.


모두 줌, 혹은 개인 영상통화 캡쳐사진이다.

그만큼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오감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여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이렇게나마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좋은 것이지만, 외롭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스킨십을 하며, 그 날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본능을 억제하는 것 같다.


참 슬픈 일이다. 슬프게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마음이 울적해지고 있다.


보려고 한 공연들은 모두 취소가 되고, 회사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맞춰 사업을 변경하기 바쁘고,

나의 일상은 무너져 가기 때문에.


4. 워라밸 따위 없어!


사실 코로나가 끝나고가 더 무섭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이제 홈오피스가 생겼고,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인프라는 생겼지만, 활용이 적었다. 그렇게 사용할 일이 적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해냈다.

집에서 회의를 하고, 일을 하고, 또 보고하는 것까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섭다.

한 번 해봤으니까, 또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들을 할 테니까.

당연하게 요구하고, 더 많은 생산성을 바랄테니까.


그럴수록 내 삶에 일은 더 많이 들어오고,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퇴근 후에 집에 가도 일은 쌓여있을 것이며, 상사는 쉽게 나한테 이야기할 것이다.


"줌으로 잠깐 들어와"


상상만 해도 싫다. 과연, 집인가 회사인가.

부디 코로나 이후에는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과 삶은 정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건강한 나의 일상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렇다면, 일과 삶, 개인의 생활까지 본연 그 모습대로 돌아가야 한다.

무언가 체득했다고 해서,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건, 어찌보면 독이 될 수 있기에.


오늘은 문화예술과 비교적 거리가 있지만, 내가 겪은 코로나(?)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불과 2주 안에 일어난 일들과 나의 생각을 이모저모 끄적인 것이다.


- 잠시 짬을 내어

*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31 사업을 위한 사업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