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잘 자라고 있고, 라벤더만 줄기들이 일부 썩어있어 걱정이 되었는데 결국 고사하고 말았다. ㅠ ㅠ
측백나무(블루엔젤 5주)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의 묘목 1년생. 잘 자랄까?
무늬버들(화이트핑크샐릭스 6주)
생명력이 왕성하다.
죽단화
봄에 만개하고 모두 지더니 다시 한여름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처럼 많이 피지는 않는 것 같다.
수국(그랜드 플로라)
잡초가 자라는 땅은 건강하고 비옥해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잡초의 뿌리들이 땅속에서 단단한 흙을 들어 올려 숨을 쉬기 때문일까?
잡초와 끝없는 싸움은 세상 모든 농부의 공통일 것이다.
힘들게 뽑고 며칠이 지나 그 자리에 다시 가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보면 전의를 상실하고야 만다. 지금처럼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에는 더욱 그렇다. 너무 더워서 아침에 일찍 나가서 1시간 정도 일하고 저녁 해 질 무렵 나가서 1시간 정도 일해도 온몸을 땀으로 샤워를 하고 돌아온다.
나는 앉아서 호미로 풀을 뽑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어 서서 풀을 뽑는 농기구로 일을 하고 있다.
힘들게 잡초를 뽑고 있는 나를 보는 여기 시골 어른들은 "뭘 힘들게 일일이 풀을 뽑아? 요즘은 농약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어."라며 위로 반 핀잔 반으로 나의 순수한 노동의 가치를 저하시키곤 한다.
이토록 풀을 뽑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단위면적이 넓어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결국 제초제라는 극약처방을 하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흙이나 식물이나 이를 섭취하는 동물, 사람에게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잡초를
유익함과 해로움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잡초와의 싸움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유익한 것은 살리고 필요 없고 해로운 것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은 없어 보인다.
이는 그대로 자본의 경제학으로 이어져 농약을 만드는 화학회사의 정당성을 무감각하게 지지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농촌에 노인이 대다수에 일손도 부족한 데다 인건비나 생산경비는 날로 상승하고 수지를 맞추기 위한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인체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나름의 정당성인 것이다. 친환경 농법이 좋다는 것은 일선의 농부들도 잘 알지만 농법의 전환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잡초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잡초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흙과 물과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모두 건강하게 공생하는 생명의 다양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잡초를 제초제로 절멸시키지 않고 친환경 퇴비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자연의 순환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약의 해로운 독성 성분이 흙으로, 물로, 식물로, 동물로, 사람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악순환을 지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