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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아빠 Jul 08. 2022

게으른 아빠의 정원일기  #14

새로움과 힘듦

정원과 텃밭 가꾸기라는 게 말이 쉽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든 게 새롭고 힘이 든다.

시골 출신이어서 부모님과 농사일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지만 내가 모든 걸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몸으로 느낀다.

기본적인 작업 도구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서 묘목을 심는 문제, 정원의 형태를 정하는 문제, 수도 설치  등사소한 것도 어떻게 할지 몰라 항상 당황스러움의 연속이다.

애초에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사실 모든 게 문제의식 투성 이이다.

그래도 각종 정보가 살아 숨 쉬는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이 있어 다행이지만.  


정원 부지에 끌어오는 수도 설치만 해도 그렇다.

일단 시청 건축과에 가서 농막 축조신고를 하고 신고필증을 받은 후에 다시 수도과에 제출을 하면 시에서 선정한 공사업체가 시청과 계약을 해서 공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이 한 달 정도 걸리는데 내 업무가 바빠서 직접 수도공사 현장에 못 갔고,  다음날 묘목을 심으려고 도착했는데 밭에 수도 계량기만 덩그러니 설치되어 있고 정작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래 황급히 공사업체에 전화했더니 자기들은 계량기만 설치하고 수도꼭지 설치는 안 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바로 옆에 밭주인아저씨한테 양해를 구하고 수돗물을 물통에 떠다가 묘목에 물을 주었고, 그 후에 따로 수도설비업자를 불러 수도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여!)

남이 하는 걸 그냥 바라보는 것하고 내가 직접 해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은 자주 일어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하나 둘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 처음 해보는 일은 새로우면서 동시에 힘이 드는 일이다.

나에게는 새로움과 힘듦이 서로 변주를 하며 음악이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힘듦을 포기하면서 기존의 방식에 매달리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매너리즘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집안 청소를 하면서 흐트러진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으면 불과 한 시간도 안되어 정리의 보람도 없이 모든 게 난장판이 되고야 만다.

4살, 8살 아이 둘도 그러한데 친구들까지 놀러 오는 날이면  '오! 마이 갓'이다.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번 같은 장난감이나 도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도 자기들끼리는 항상 즐겁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걸 보노라면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정된 소유물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풍요에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앞에 연꽃 방죽)


(유카나무 꽃이 피었어요!)

마음의 풍요를 가로막는 의 무기력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아마도 새로움과 힘듦을 거부하는 자신에게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연을 보라!

잠시도 같은 것이란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한다.

같은 것 같지만 같지 않다.


아이들의 매일의 놀이가 똑같은 놀이인 것 같지만 늘 다르게 전개되듯이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자연의 모습이다.

여리고 약한 것 같지만 하루 종일 놀아도 지칠 줄 모르고 꿀잠을 잔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에너지가 넘친다. 자연의 복원력을 그대로 빼다 닮았다.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는 휑한 정원 텃밭이지만 이곳에 나와 움직이다 보면 번잡한 마음은 오간데없고 나와 함께 노니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약동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생성과 소멸을 오가며  나에게 미소를 건네면 나도 말없이 미소로 응답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낼일이 아니다.

작게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크게 보면 계획대로 되어가는 중이다. 계획을 어느 시기의 완성체로 생각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무한한 변화의 상태로 보면 애초에 계획이란 것은 나의 고정된 생각이 만든 것일 뿐,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면 삶은 더 풍성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정원의 꽃들에게 내가 이렇게 자라라고 해서 꽃들이 그렇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꽃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랄 뿐이다.

(베란다에서  옮겨  심은 수국들)

결국은 내 고집스러운 생각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탓하며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나 자신을 옭아매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을 알겠다.


삶의 정답은 있으면서 동시에 없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정답인 것이 주관적으로는 오답이 되기도 하고, 또한 그 반대가 되기도 다. 우리는 어떤 전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정답에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객관이니 주관이니 전제이니 하는 모든 언어체계는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조금만 논리가 틀어져도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 없다.

저 푸른 숲을 바라보라!

저 화사한 연꽃을 바라보라!


기 어디에 정답과 오답이 있는가? 주관과 객관이 있는가? 전제와 논리가 있는가?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이 무더위  속에서

잠시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상쾌한 바람 한 점이 있을 뿐.  바람에 둥그런 연잎이 흔들리니 이내 나도 따라 흔들린다.

   

오늘도 아이들에게서, 자연에게서 배우며 느낀다.

(비단향꽃무 기다란  열매안에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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