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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22. 2023

단 1박 2일 파리 여행

프랑스 소도시 체류기 외전 - 여행편



프랑스 소도시 체류기 외전 - 여행 : 파리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낭만의 표상인 프랑스 파리 Paris는, 내게 꿈같은 곳이다. VICHY에 살며 나름대로 프랑스 이곳저곳을 누비고 돌아다녔지만 아무렴 제일 자주 갔던 곳은 파리. 어학연수 오기 전에도 혼자서 유일하게 다녀온 외국 여행지다. 첫 번째 파리 여행은 대학 졸업 후 2016년 10월, 그다음이 어학연수 시절 2018년 9월과 11월, 지금 기준의 마지막이 신혼여행의 2022년 9월.


  이토록 자주 파리를 찾았던 이유는, 나의 역사학 연구지역이기 때문이었다. 학부시절 졸업논문 연구주제를 ‘19세기 프랑스 예술 속의 현대적 표상’으로 정했고, 3개월 동안 프랑스와 파리 그리고 예술에 대해 미친 듯이 빠져들어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 생긴 애착이 어학연수로 이어졌다.






  프랑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될 무렵, 나는 파리로 주말 동안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기분전환 겸 2년 전 첫 답사 때 보지 못했던 졸업논문 주제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전 답사 때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사실상 2차 답사였다. 여행준비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SNCF로 왕복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면 끝. 그다지 할 게 없었다.


  VICHY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기차역이 있다는 점이다. 이 작은 역에서 TGV(고속 열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언제든 여행할 수 있다. 파리 Paris까지는 3시간, 리옹 Lyon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가까운 큰 도시에서 또다시 북부, 남부, 서부, 동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프랑스 내 기차여행은 정말 편리하다.


  보통 기차 안에서는 통신이 잘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자거나 책 또는 신문을 읽는다. 나는 핸드폰을 충전시켜 놓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편이 좋았다. 소들이 풀을 뜯고 양들이 유유히 돌아다니는 드넓은 프랑스의 평야를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색에도 잠기게 된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평야가 기차여행을 할 때마다 제일 좋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니까.


  낮이나 해가 질 때나 프랑스의 평야는 아름다웠다. 교과서에서 말하던 드넓은 평야, 책에서 나오던 초원,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풍경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하늘이 너무 크다는 걸 프랑스에 와서 처음 느꼈다. 고속도로를 내달릴 때면 언제나 첩첩산중 터널만 지겹게 나오던 한국과는 판이한 풍경이었다.


파리로 가는 풍경


  파리로 가는 풍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Paris-Bercy역에 도착한다. 가방 하나 둘러맨 채로 근처 지하철역이나 버스를 이용해 숙소로 간다. 짧게 머물 거라 지하철에서 10장짜리 표를 사면 만사 OK. 이 표로 버스도 지하철도 이용 가능하다. 나는 파리에 가면 웬만해선 버스를 애용한다. 지하철은 소매치기, 강도의 위험성도 있지만 코가 막히고 기가 막하는 사람들의 체취에 숨 쉬는 게 죽을 맛이다. 그래서 서울보다 작은 면적에 지하철역이 어느 곳에나 있어 이동이 빠르지만 느긋하게 앉아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버스를 더 추천한다. 흠, 생각해 보니 기차도 버스도 아무래도 나는 경치파다.


  아무래도 첫 파리 여행 때 번화가 한복판에서 집시들에게 강도당한 적이 있어 긴장이 되었지만 너무 설레기도 했다. 그때는 두려움과 황망함에 사로잡혀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욕하면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걸어갔었는데…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은 것이 기쁨인 도시에서 숙소에 도착하니 엄청난 안도감이 몰려왔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널찍한 아파트. 멋스러움이 물씬 파묻혀 푹 잤다.



  다음날 아침, 오르셰 미술관에서 내가 그토록 찾았던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는 그 자리에서 그냥 얼어버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울컥하는 마음으로 우두커니 그저 바라보며 사로잡혀 있었다. 나를 프랑스에 구질구질하게 미련 갖게 한 그 작품, 3년 동안 그토록 직접 보기만을 바랐던 그 작품. 프랑스라는 꿈을 꾸게 한 작품, 지금 나를 이곳에 있게 한 그 작품만을 40분 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렸다.


오르셰 미술관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작품 Manet의 <l'Olympia>



  벅찬 감정을 안고 나와 Giverny(지베르니)로 향했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Monet(모네)가 말년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다. 프랑스의 9월 초는 한국의 10월 초 날씨라 정원이 쓸쓸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각양각색의 꽃이 만발한 모네의 정원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19세기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Monet의 집도 마을도 프랑스의 또 다른 한적함에 물씬 취하게 만들었다. 꼭 그 옛날에 들어와 있는 기분.


모네의 집 정원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룬 파리 여행은 마음이 꿈결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선선한 저녁, 숙소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홀로 그 기분을 누리다 잠들었다. 아아, 행복이다.







  여행 마지막 날인 일요일, 마카롱 한 상자를 사 먹고, Avenue des Champs-Élysées(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일요일이라 많은 상점들과 식당들은 열지 않은 상태였다. 항상 붐볐던 파리의 고요함. 새롭고 좋았다.


  Galeries  Lafayette(라파예트)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파리 전망이 한눈에 보이는 꼭대기로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파란 지붕 흰  벽이 늘어선 파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파리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즐기다 당시 떠오르던 관광지인 마레(Marais) 지구로 향했다. 돈도 없고 편집샵 같은 새로운 형태의 상점이 낯설기만 해서 그저 거리만 거닐다 스타벅스 카페에서 핸드폰도 에너지도 충전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한산했던 일요일의 파리



   오후 6시 기차를 타고 VICHY로 돌아가기 위해 Paris-Bercy역으로 갔다. 15분 연착된 기차에 몸을 싣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VICHY역. 어두컴컴한 밤, 기차에서 내리니 문득 집에 왔다는 벅찬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잠깐, ‘집’이라고? 프랑스에는 잠깐 살러 온 것이라 내 집은 한국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여기 있으니,  그래 여기가 내 집이구나. 여름내 거의 죽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나는 어느새 VICHY를 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5분 밤길을 걸어 꼭대기층에 있는 내 원룸 스튜디오로 올라오니 파리 여행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오래된 목표를 이뤄 답답함을 내던져서일까, 프랑스가 편해졌다.


한 밤 중의 VICHY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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