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금 Aug 25. 2021

그의 빛나는 청록색 그리고. 그의 영혼어린 눈동자

화가 모딜리아니(A. Modigliani)의 초상화에 대한 짧은 생각




언젠가 모딜리아니에 대해 한 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오늘이 되었다.





Amedeo Modigliani (1884-1920)





2015년 여름, 한창 전시를 다니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때였고,

마침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모딜리아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어문화학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모딜리아니는 알고 있었다.

대략적인 그의 인생사도, 그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렇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내 관심은 거의 인상주의자들에게 쏠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당시의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반 정도 곁들여 모딜리아니 전시에 갔었더랬다.





Portrait of Dr. Paul Alexandre (1909)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별 기대 없이 갔던 나는, 모딜리아니의 잔인하리만치 선명한 청록색에 무너졌다.

진한 청록색이 이렇게 참담할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다니!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강렬한 색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청록색 때문에 그림이 더욱 선명해 보였으며 빛나기까지 했다.

마네(E. Manet) 이후, 청록색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하는 화가는 모딜리아니가 유일할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연인, 잔 에뷔테른 Jeanne Hébuterne (1898-1920)




모딜리아니의 숱한 그림들 중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청록색을 제외하고는 눈동자에 그 이유가 있다.



모딜리아니는 초상화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그의 초상화의 인물들은 비정상적으로 목이 길고 대개 눈동자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은 어딘지 슬퍼 보이고 애수에 젖은 듯하다.



모딜리아니는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Je ne peindrai tes yeux, que lorsque je connaitrai ton âme…
네 영혼을 알게 될 때까지 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을 거야...


- A. Modigliani (1884-1920) -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는 멋진 글귀다.

조금 꼬아 본다면 약간 중2병 같지만 말이다.

이런 그의 철학으로 인해 눈동자가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의 깊이에 내가 잠겨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주문한다는 것은 셔터음이 긴 사진을 찍는 것과 같으니

그 단시간 안에 서로를 깊이 알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눈동자가 그려진 초상화는 드물다.

그렇기에 눈동자가 정확히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이 내게 강렬히 다가왔던 것이다.





눈동자가 없는 모델들과 아름다운 청록색들. 모딜리아니는 청록색을 굉장히 아름답고 강렬하게 사용했다.




내 눈동자도 누군가에게 정확히 읽힐 순간을 바라며,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모딜리아니의 강렬한 청록색처럼 각인되길 바라며

블로그에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었다.




이러한 소망들을 이루기 위해 계속 글을 쓴다.

가장 깊은 마음을 휘저어 일상을 쓰고, 삶을 쓰고, 생을 쓴다.

그리고 가끔 상상들을 쓴다.

내가 살아남는, 살아가는 방법으로 글을 택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최근에 펑펑 운 영화장면: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