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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Apr 28. 2022

세상을 홀린 두 번째 도전

아하 'Take on Me'

새로웠다. 무척 짜릿했다.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노르웨이의 신스팝, 록 트리오 아하(a-ha)가 1985년에 발표한 데뷔 싱글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는 전에 대중음악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연출로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온 세계가 그 뮤직비디오에 눈길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마주쳤다 하면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참신했고 근사했다.


뮤직비디오는 사이드카가 달린 모터사이클 경주를 그린 만화의 몽타주들로 시작된다. 뒤이어 카페에서 한 여성이 이 만화책을 보는 모습이 나온다. 경주에서 우승한 주인공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하는 장면 다음에는 주인공이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는 컷이 등장한다. 독자로서는 주인공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은 만화를 보고 있던 여성을 향해 윙크한다. 이내 주인공의 손이 만화책 밖으로 뻗어 나와서 여성에게 이곳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잠시 망설이던 여성은 주인공의 손을 잡고 만화 속으로 들어간다.

아하의 프런트맨 모르텐 하르케(Morten Harket)가 연기한 만화의 주인공은 마치 세레나데를 부르듯 여성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Take on Me'를 부른다. 이때 카페에서는 여성 종업원이 만화책을 보던 여성이 커피 값을 계산하지 않고 내뺐다고 생각해 화를 내면서 만화책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로 말미암아 만화에서는 모터사이클 경주의 경쟁자들이 악당이 되는 변화가 생긴다. 둔기를 든 경쟁자들이 무섭게 주인공을 쫓자 주인공과 여성은 황급히 도망친다. 그러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선 주인공은 여성이 탈출하도록 종이로 된 벽을 찢어서 구멍을 낸다. 쓰레기통에 있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여성은 만화책을 들고 집으로 달려가 다음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구겨진 종이를 편다.


주인공이 쓰러져 있는 그림을 확인한 여성은 눈물을 흘린다. 이때 주인공은 일어나서 만화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동시에 만화 속 캐릭터의 모습과 실제 사람으로 번갈아 가는 주인공이 여성의 집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2차원의 장벽을 부수려는 듯 이리저리 벽으로 몸을 던진다. 마침내 주인공은 인간이 되고, 여성은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주인공에게 달려가는 것으로 뮤직비디오가 끝난다.

아하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는 1986년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 콘셉트 비디오', '최우수 신인 비디오', '최우수 특수 효과 비디오' 등 자그마치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사람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촬영한 후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활용해 특별함을 뽐낸 덕이다. 물론 'Take on Me' 전에도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뮤직비디오가 몇 편 있다. 하지만 기존하는 로토스코핑 뮤직비디오들은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반면 'Take on Me' 뮤직비디오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로맨틱 판타지의 스토리를 갖춤으로써 동시대 젊은이들의 관심과 열띤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 인기를 포착해 조용필을 캐스팅한 탄산음료 '맥콜'도 1980년대 후반 'Take on Me' 뮤직비디오를 따라 한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노래가 좋았기에 뮤직비디오도 돋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머릿속에 각인되는 신시사이저 반주는 영상을 한층 감각적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가성으로 부르는 후렴은 고음을 소화함에도 부드러움을 유지해 낭만적 정서를 키워 준다. 멜로디는 감미롭지만 분당 비트 수가 160이 넘는 매우 빠른 템포의 곡이라서 내내 시원스럽다. 게다가 간주에 날쌔게 여러 음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시사이저 연주가 들어가서 긴장감도 조성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날 받아 달라고 달콤하게 얘기하지만 곡의 외관은 영락없이 역동적인 댄스음악이다. 음악 팬들은 서정미와 경쾌함을 겸비한 'Take on Me'에 환호했다. 노래는 세계 각국 음악 차트 1위에 올랐다.

노래가 훌륭하긴 했으나 뮤직비디오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사실이다. 원래 'Take on Me'는 1984년 출시됐다. 이때의 뮤직비디오는 푸른색이 감도는 스튜디오에서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주되게 보여 주면서 이따금 여성 무용수의 텀블링 실루엣을 내보낼 뿐이었다. 정말 허름하고 따분했다. 이때 'Take on Me'는 노르웨이의 차트에서만 3위를 기록했고 다른 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노래가 크게 성공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던 아하의 매니저는 멤버들에게 전문 프로듀서를 고용해서 곡을 다듬자고 제안했다. 아하가 속한 음반사의 한 임원 또한 자신이 구상한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다시 만들자고 경영진을 설득해서 아하의 새로운 출발을 도왔다. 이로써 조금 더 세련된 음악, 대중의 눈을 확 끄는 영상이 나오게 됐다. 아하는 두 번째 도전으로 세상을 매혹했다.


<법무사지> 2022년 4월호 '세대유전 2080 명곡'


https://www.youtube.com/watch?v=djV11Xbc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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